나 '아싸(아웃사이더)' 맞다. 흔쾌히 인정한다. 복학생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학교와 자취방이면 나의 궤적을 다 그릴 수 있다. 모든 수업을 혼자 듣고 학생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는다. 꽉 찬 무리는 언제나 부담스럽고 주로 틈을 발견한다. 좁은 사이를 비집으면서 어떻게든 적응한다. 과행사나 동아리도 떠난 지 오래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습관을 조금 잃어버린 편이다. 한 때 친했던 사람에게 연락이 오면 반갑지만 먼저 만나자고 하지는 못한다.
대학교에 처음 갔을 땐 내가 아싸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나는 반드시 사회성이라는 미덕을 갖춘 인싸여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단체 채팅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숨 가삐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나만 가만히 있는 게 불안했다. 존재감을 잃어갈까 봐 무서웠다. 잊히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무리에 끼고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동아리를 4개나 들어갔다. 월요일엔 보도사진을 찍고 목요일엔 기타를 치고 금요일엔 잡지를 만들고 토요일엔 야구를 했다. 2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학과 행사와 뒤풀이도 빠지지 않았으니 나의 개인적인 시간은 있을 수 없었다. 보도사진 학회장까지 맡게 되자 더욱 바빠졌다. 나를 봐야 할 때조차 남을 봤다.
술도 많이 마셨고 즐겁긴 했다. 인싸로 무장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쾌락 위주이긴 했지만 소중한 기억이 됐다. 오히려 이것저것 해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특정한 시점이나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뭔가가 스며든 거 같다. 쾌락이 아닌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 이제는 선명히 그릴 수 있다.
자유롭다. 수업 때는 눈치 볼 것 없이 앞자리에 앉는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여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서 좋은 책을 읽고 내 글을 쓰는 게 좋다. 유행한다는 인싸용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문장을 쌓는다. 나를 떠올릴 수 있는 문체를 갖추는 게 목표다.
존경하는 타인이 딱히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나만큼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뭐든지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다. 늘 최선을 다하는 게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운세의 탓으로 돌리는 건 타고났다. 웬만한 불행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쉽게 받아들인다. 어떤 문제도 나 혼자 잘못해서 벌어지진 않더라.
아싸는 없다. 극복의 대상도 아니다. 사회성의 정도가 다른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회성은 사람을 특징짓는 수만의 척도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 아싸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권위는 폭력적이다. 사람을 평면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부정적인 채도가 강하다. 아싸라는 말에 가려지는 사람의 입체감을 응원한다.
아싸냐고 물어보면 맞다고 한다. 악의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반갑게 반응한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간 나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으니 미안한 만큼 격하게 내 손을 잡는다. 남에게 나를 알리느라 정작 나를 잊었었다. 몇 년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들었다. 원래부터 나의 귀에 울리고 있던 소리임을 늦게나마 알아차렸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