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최치원과 사강과 술 취한 화가

by 유연

노교수의 느지막한 수업을 들으러 발걸음을 바삐 옮기다 옆을 보면 종종 술 취한 화가가 있다. 낡은 정경관 옆 CU의 노상에 앉아있는 그를 목격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늘 같은 시간, 장소에 있으니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를 알 수도 있겠다. 아무도 이름은 모를 테지만 그는 언제나 꼿꼿하다. 그림을 그리거나, 보거나, 너무 취한 나머지 너절한 나무 탁자에 엎어져 자거나.


소주 몇 병, 혹은 캔맥주. 곁들이는 안주도 없이 그는 늘 술에 취해있다. 어지럽게 놓여 비뚤어진 소주병 뚜껑이 그의 노랗고 헝클어진 머리와 제법 어울린다. 초점 잃은 눈은 곁눈질에도 피곤해 보인다. 고단한 눈빛으로 항상 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니 나는 그가 무엇을 보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 시대에 유별나게도 스마트폰은 아닌 것 같다. 종이에 4B연필로 소묘한 듯한 여성의 얼굴이 여러 장 보인다. 모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종이는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명암도 뚜렷하지 않다. 아무리 봐도 완성작은 아닌 것 같고 에스키스다. 그는 무엇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걸까.


혹여나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고자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거라면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고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니 따지기도 모호하다.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면 부담스럽겠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그는 항상 셋 중 하나다. 그림을 그리거나, 보거나, 너무 취한 나머지 너절한 나무 탁자에 엎어져 자거나.


그가 왜 항상 그곳에 머무는지 궁금해하며 노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제자들에게 흠앙을 받는 노교수는 최치원의 한시 <추야우중(秋夜雨中)>을 강독했다. 최치원은 문장으로 천망했으나 신분적 한계를 겪고 괴로이 시를 읊조렸다.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이라는 구절이 인상깊다. 최치원은 자신과 세상 사이의 거리, 만 리를 향해서 끝없이 헤매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술 취한 화가도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게 떠돌고 있는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은 50대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마약 복용 혐의로 선 법정에서 진술했다. 사강은 극에 달한 사치와 낭비, 이혼과 수면제 남용, 마약과 도박까지 하면서 자신을 파괴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치원의 쓰라림과 사강의 문학적 절규는 술 취한 화가를 옆에서 보게 만든다. 앞에서 따지거나 뒤에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자세로 걱정하되,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그가 더는 술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 안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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