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쟈코멜리
예술과 거리가 멀다. 창작은 전혀 소질이 없고 미술관, 박물관도 따분한 공백이었다.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으니 작품은 있었으나 나에겐 빈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술감상 초보자를 위한 교양서적도 읽어봤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눈을 가지면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걸까. 나에게 부족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 예민한 촉수를 뻗어 세상을 풍성한 감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어렴풋하다. 예술가는 분명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들 일터인데 그들이 보여줘도 내가 눈이 없다는 게 애석하다. 황홀한 시선을 가져 건축물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 기리의 답답한 절규가 뜨끔하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루이지 기리-
마리오 쟈코멜리의 사진을 봤다. 아니, 읽었다. 사진의 제목이 감정을 고양했다.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처음으로 사진을 보고, 읽은 덕에 짙은 여운을 느꼈다.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가 1948년에 쓴 시 <나에게는 손이 없다>에서 따온 제목이다. 설경에서 춤을 추는 수사들이 행복해 보인다. 세속보다 오히려 역동적이고 밝다. 사진에는 수사들의 고민과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속 두려움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사진의 제목에서 암시될 뿐이다. 자코멜리는 의도적으로 흑백의 대비를 높였다. 찰나의 순수는 빛에 가까운 흰색으로, 사제복의 무게감은 짙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수사의 고뇌는 회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농후한 검은색에 가려진다.
수사의 소리 없는 외침은 얼마나 처절한가. 사진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수사로 마주해야 할 세상의 고난이 익히 보인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겉으로 티 낼 수 없다. 이상과 다른 현실의 벽에 얼마나 많이 부딪힐까. 자신만의 고독을 확립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 열정만으로 직진하다가 수없이 좌절해야 되는 순간들이 눈에 선명히 그려진다.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 되는 균형과 선함을 시의적절하게,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삶을 구원한다."라고 했다. 책을 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이 와닿는다. 자코멜리는 경쾌한 사진과 절묘한 제목을 통해 본능적으로 깨닫게 했다. 수사로서 살아가며 기울어지고, 깨어질 균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선을 이해했다.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면 존경으로 이어져 결국 나 자신을 구원한다. 타인의 처절함과 절박을 우리는 얼마나 쉽사리 외면하는가.
조금 이르지만, 촘촘히 짜인 니트를 꺼냈고 옷깃을 여미면서 걷게 되었다. 해가 질 무렵, 가산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에는 옷깃을 여미지도 못하고 타인에게 홍보 전단지를 건네주는 손이 많다. 읽어보지도 않을 종이 쓰레기고,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도 아니다. 그래도, 일찍 들어가셨으면 하는 마음에 먼저 두 손 모아 공손히 내밀곤 한다. 별 것 아닌 일에 늘 놀라시며 좋아하시는 얼굴이 안타깝다.
무감각하게 노트북을 타이핑 하고 있던 내 손이 다르게 보인다. 열 손가락이 모두 달린 손으로 나는 뭔갈 했던 적이 있었는가. 타인의 얼굴을 쓰다듬자. 주위를 둘러보고 필요한 곳에 적당한 손을 내밀자. 보잘것없는 나의 손이라도 쓰다듬는 것만큼은 따뜻하게. 타인의 삶을 깨닫고 이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