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나는 부끄럽게도 고려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by 유연

고려대학교는 이상한 학교다. 동문회를 교우회라고 자칭하며 막강한 결속 관계를 자랑한다. 한국 3대 연고주의 사조직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없는 데가 없다. 가까운 해외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미국,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도 있다. 사회적 공기로서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언론 영역까지 고대 언론인교우회는 침투했다.


나는 이 집단의 명백한 수혜자다. 기자를 지향하며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권리를 누리고 있다. 언론은 고려대학교가 다 잡고 있다고 수없이 들었다. 좋은 교육을 받았고 좋은 기회도 많았다. 좋은 선배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술자리도 많았고 그만큼 연락처 교환도 많았다. 고려대학교 교우회로부터 장학금도 받고 있고 마지막 학기에는 고대 언론인회가 후원하는 기자 프로그램도 지원할 예정이다.


고려대학교를 떠올리면 당연히 감사를 느낀다. 덕분에 정말 수월하게 언론인의 길을 밟고 있다. 만약 언론인이 된다면 고대 언론인회로부터도 많은 지원을 받을 것이다.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직장에서 세력화하고 집단적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옳지 않은 것에 저항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고려대학교 교우회의 수많은 순기능을 인정한다.


순기능이 있음에도 나는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떳떳하지 못하다. 수혜자라는 기쁨도 있지만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때로는 부끄러움이 더 커서 회피하거나 죄책감까지 가진다. 고려대학교라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교우가 되기 위한 높은 문턱을 설정해두고 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한다. 문턱을 넘었을 경우의 보상이 막대할수록 넘지 못했을 경우의 박탈도 함께 증가한다. 벗을 뜻하는 교우니 참언론인상이니 기부니 하며 선순환적 수식어를 붙이지만 고려대학교라는 집단은 그들만의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폭력적이다. 지금의 보상체계는 기형적으로 과하다.


모순적이지만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선배가 장학금을 준다는 데 거절할 용기가 없다. 고려대학교 후배로서 인턴 기회가 생기면 잡고 싶다. 개인이 집단 앞에서 무력함을 몸소 느낀다. 일말의 죄책감은 금방 사라지고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맥없이 부서진다.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다. 독서를 통해 무장하고 있는 나만의 가치관이 바뀌는 게 너무나 무섭다.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 썼듯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꿈꾸지만 쉽지 않다.


어쨌든 고려대학교의 문턱을 넘은 사람들은 현 교과 중심의 교육체제를 충실히 따른 사람들이다. 이미 누릴 만한 권리는 다 누리고 있다. 없어지지 않는 사회적 인식과 좋은 교육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성공적 입시의 보상을 어느 선까지 정해야 할지 뚜렷한 경계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축소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도 교우니 뭐니 하면서 고대 졸업생끼리 뭉치면서 다른 개인을 배척할 이유는 없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글을 쓴다. 사회는 어차피 바뀌지 않으니 내가 거부할 용기를 내든, 혹은 길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벌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 필요 이상의 영역까지 고려대학교가 힘을 뻗칠 필요는 없다. 특히 언론은 사회적 공기다. 모든 연으로부터 다른 어떤 집단보다 자유로워야 한다. 학연에 대한 신경과민일 수도 있지만 예민할 필요가 있다. 고대 언론인회가 부끄러웠던 순간이 많다.


고려대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러지 못함을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를 바꾸고 싶다.

톨스토이의 단편선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나온 문장을 바꿔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고려대학교는 권력을 악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그러운 방식으로 그러한 권력을 누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 인식과 그것을 자기 의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대한 문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