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당신의 사랑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by 유연

한 문장으로 콕 집어서 말해보라고 하니까 어떤 말도 못 하겠어요.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허풍을 조금 떨어볼까요. 한 문장으로는 턱도 없고 수십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겠다고 넉살을 부렸네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생각해볼 만한 가치는 있죠. 로버트 레드퍼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온 유명한 대사도 있으니까요.


“우린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순 있다.”


정답을 알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그저 글을 쓰면서, 또 따라 읽으며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내린 답을 정답으로 여기고 정답으로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모든 과정에서 관계의 무늬가 사랑에 가까워 질 테니까요.


"내가 잘할게"

쉽게 말해버렸네요.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고민 없이 나 혼자 잘한다고 사랑할 순 없으니 잔인한 말이네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고 하면 될테니까요. '어떻게'가 빠져있는 추상적인 결심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음의 위선 같아요. 자칫 오만에 빠져, 나는 잘해보려고 했으니 알아달라고 변명까지 한다면 최악이겠네요. 한계가 뻔히 보이고, 별 고민 없어 보이고, 오래가지도 못할 것 같아요. 잘 모르겠더라도, 상대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서 어렵게 말했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니 그만큼 상대에게 오래 머물 수 있을 테죠. 오히려 내가 잘한다고 해서 많은 것을 바꿔 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는 게 낫겠어요. 그래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야"

이상형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사람은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니까요. 가끔 불안해도, 무력해도, 자존감이 낮아도, 그래도 되는 게 사람이니까요. 이상형은 실체가 없는 틀을 만들어내고 사람을 재단합니다. '이 정도 들어맞으니 괜찮겠다', 혹은 '저건 좀 심하다' 하면서 사람을 나누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주 가끔 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을 발견했다 치더라도, 언젠가 '너 그런 사람이었어?'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도 당신이 생각했던 그 사람인데요. 그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던 게 아닐까요.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내던져지면 그렇게 할 테니 그 사람이 옳다고 믿어줬으면 해요. 사람은 우리 생각보다 연약하고 상황이나 환경에 휩쓸리니까요. 그 사람을 내 틀대로 넣으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완전히 사랑했으면 합니다.


"나의 소멸"

사랑이 무엇보다 특별한 이유는 이타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모든 감정을 공유할 수 있죠. 좋을 때 함께 좋고, 슬플 때 함께 슬프니까요. '나'와 '너'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우리'가 되는 과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건 특별합니다.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 어긋나지만, 덕분에 기분 좋은 균열을 선물해주죠. 대화하다 보면 '내'가 했던 말인지, '너'가 했던 말인지 구분이 안 되고 '너'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내' 생각처럼 여겨질 때. 자신이 소멸하고 우리가 되어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사랑 아닐까요. '너'를 위해 하는 행동이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되고, 결국 '내'가 좋아서 하게 되는 일로 순환한다면 지속해서 사랑할 수 있겠습니다.


"옆에 있을게"

모든 순간, 상대가 힘들어할 때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으면 해요. 불안이 밀물과 썰물처럼 넘실거릴 때 비록 거센 물살을 막아줄 순 없겠지만 옆에서 함께 버틸 순 있으니까요. 물결처럼 서로를 감싸주며 언젠가 반드시 지나갈 파도를 함께 견딜 수 있잖아요.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떤 불안이 오더라도 서로 붙잡고 있으면 뭐든지 지나갈 것이라는 짙은 확신이 남겠죠. 서로의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합니다. 앞에서 이끌지 말고, 뒤에서 방관하지 말고, 바로 옆에서요. 서로를 바라보느라, 어리석게도 상대에게 충고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옆에서 그저 손잡고 함께 한다면 좋겠네요.


"습관적 진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습관처럼 자신도 모르게 나올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콩깍지가 1년, 사랑의 감정이 2년간 유효하다고 하던가요? 그전에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네요. 감정뿐인 사랑 대신 의지와 더불어 오늘부터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으면 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습관적으로 사랑할 수 있겠네요. 무의식중에도 서로를 정말로 아끼는 마음이 깃든다면 위선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너무 메이지 말고 자체로 빛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빛을 동경하는 누군가 반드시 당신을 알아볼 거예요. 서로를 알아본다면 그렇게 사랑은 시작하겠죠. 우선, 지금 자신을 더 사랑했으면 합니다. 당신은 그럴만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무조건 옳아요.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설명이나 이해는 필요 없어요. 넘어져도 괜찮아요. 그 느낌만 기억한다면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있고 싶은 만큼 그곳에 있어도 괜찮아요. 바닥의 온기도 생각보다 따뜻하더라고요.


소설가 윤대녕 씨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는 사랑을 설명한 근사한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답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소개하겠습니다. 윤대녕 씨는 중2 때 짝사랑하던 연상의 교회 누나에게 편지를 줬고 둘은 연인이 됐다고 합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고요.


"나는 너를 알고 모든 사람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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