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흰 이슬조차 내린 꽃잎마다에 빛깔 다르다네

by 유연
흰 이슬이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들판을 보면 내린 꽃잎마다에 빛깔 다르다네.


변화로 출렁이는 자연을 관념화하지 말라는 일본 정형시 하이쿠다. 자연의 색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슬의 색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 맺혀있는 풀잎이나 나뭇잎의 색에 따라서 이슬은 매번 다르게 빛난다. 이를 알아챈 관찰자의 섬세한 시선이 잘 드러나서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하이쿠를 읽은 후, 이슬을 휑하고 지나칠 수 없게 됐다. 오랫동안 천천히 바라볼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


대상을 대충 보고 고착화하는 것을 증오한다. 뭐든지 쉽게 여기게 되고 머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색의 관념화는 이념처럼 굳어져서 풍부한 색의 사용을 막는다. 자연 그 자체에 깊숙이 머물지 못하게 한다. 배꽃의 흰색을 순수라 말하며 높이 칭한다면 모든 배꽃은 상징에 갇혀 다 똑같은 배꽃이 된다. 관념 앞에서 배꽃의 개별성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해가 멀리 희미한 먼동의 기운을 내뿜을 때 볼 수 있는 배꽃을 놓치게 된다. 향기로운 새벽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배꽃을 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은 지워진다.


그 뿐 아니라, 언어는 대립자질이다. 배꽃의 관념화는 그 자체로 홀로 서지 않는다. 배꽃을 그 외 모든 꽃과 대립하게 만든다. 배꽃을 순수하다고 칭한다면, 다른 꽃은 그에 비해 순수하지 않다는 말을 함축한다. 꽃들 사이의 차이에 존재하는 분별을 강화한다. 결국, 꽃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퇴색된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순수해서는 아닐 것이다. 꽃을 볼 때마다 천천히 들여다보며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색의 강화된 분별은 사회구조의 차별에 널리 쓰였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의복에 색을 달리 칠해야 했다. 일반 민중은 색채를 거의 쓰지 못한 반면, 왕가를 비롯한 특수 귀족 계급은 색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평민은 혼례 때만 유채색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색의 관념화 작업은 조선 시대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차별적으로 존재한다. 사람을 보고 한 눈에 성별을 구분해야만 하는 사회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으로 꾸며진다. 머리숱이 없는 아기의 머리에도 굳이 분홍색 헤어밴드를 씌우고, 사람들은 또 그걸 보고 여자 아이라고 짐작한다.


색의 관념화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방해한다. 색의 분별 있는 쓰임은 상징하는 바에 따라 개인을 수동적으로 동화한다. 주체적으로 쓴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편협한 사회에 따라 길러진 걸지도 모른다. 배꽃의 흰색을 사랑하지만 웨딩드레스의 일관된 흰색은 불편하다. 흰색이 여성의 순결과 절세미인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쓰일 때도 물론 있다. LGBT에서의 무지개 색은 그들의 존엄과 다양성, 평화를 상징한다. 무지개 기는 길버트 베이커가 디자인했지만 그는 디자인 상표 등록을 거부하며 “무지개 깃발은 사용하는 이들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색의 의미는 사회나 문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불과 100년 전에는 분홍색이 남성의 색이었다. 1927년 <타임>지가 아이의 성별에 따라 어떤 색깔 옷을 권장하는지를 정리한 표에 따르면 보스톤과 뉴욕, 클리블랜드, 시카고 등 미국의 주요 백화점에서 남자 아이에게 권하는 옷은 분홍색이었다.


지금의 색에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와 상징이 담겨있다. 무의미할 정도로 왜곡되는 것에 집착하는 대신, 시시각각 변화로 반짝이고 있는 색을 깊숙이 들여봤으면 한다. 렌즈는 굴절되고 언젠가 닳기 마련인 소모품이다.


배꽃은 순수를 상징하기 위해 피어나지 않았다. 햇살에 따라, 바람에 따라, 이슬에 따라 다르게 일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배꽃이 견뎌낸 태풍과 천둥, 벼락의 소리는 그 때마다 들린다. 색을 관념화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오명이다. 어떠한 틀에도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피어난 흰색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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