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어김없이 배는 아프다

by 유연

바닥을 구를 정도는 아니었고 어쨌든 배가 자주 아팠다. 그럴 때면 공부도, 책 읽기도 뭐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유달리 유난 떠는 건 아니었다. 고통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니 나에겐 복통이 제일 골치 아팠다. 체했던 것도 아니었다. 구급약 상자 속 늘 들어있던 정로환은 효험이 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 위장과 콩팥 사이에서 애처롭게 걸려 있는 듯했다. 음식물 대신 웬 정체 모를 관념을 억지로 소화하려 했으니 창자로서도 무리였을 테다. 게다가 그놈은 뾰족했다. 창자에 맡겨버리고 내가 외면하려하면 그놈은 바늘이 되어 존재감을 부각했다. 나는 자주 찔렸고 어김없이 배가 아팠다.


고등학생 때 특히 그놈과 각별했다. 배치 고사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가 파도치듯 넘실댔다. '고삼'은 단순한 학년이 아니었다.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상징처럼 다가왔다. 뭐든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이때 생겼다. 그 당시 나는 지구였고 고삼은 달이었다. 고삼은 국어 시간에 배웠듯 배꽃처럼 휘영청 밝지만은 않았다. 대입 전까지 우린 분리될 수 없는 가혹한 지경이었다. 조석간만의 차가 만들어냈던 파도는 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보다 막강하게 나를 지배했다. 배는 어김없이 아팠지만 벗어날 생각도 못 했고 오히려 종속됐다. 잔인했지만 최선을 다해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달 없어지면 지구가 멸망한다니까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주로 휩쓸리는 편이었다. 내신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고, 모의고사는 등급 하나하나가 절실했다. 결국, 큰 병원에서 CT를 찍었던 적도 있었다. 평소처럼 배가 아프길래 익숙하게 여기며 자주 가던 병원에 갔다. 별일 아닌 줄 알았다.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던 낯익은 의사의 손이 떨렸다. 친절했던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딘가에 전화하며 고함을 질렀고, 간호사는 뛰어왔고, 나는 빠른 등기우편처럼 택시에 실렸다. 등 뒤로 뭔가 당부하는 듯한 고함이 들렸었는데 기억하기엔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께 문자로 나의 송달과정을 알렸다. 대학병원으로 갔던 듯싶다.


큰 병원 의사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다시 한번 진맥을 짚더니 암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응? 갑자기 놀라게 해놓고 연이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의사는 치밀했고 동의서의 자간은 역시나 몹시 비좁았다. 무척 겁났으니 나의 동공이 작아졌던 탓일 수도 있겠다. 대충 읽은 후 사인 대신 내 이름을 정자로 썼고, 꽤 비싸 보이는 요란한 장비가 굉음을 냈고, 몸의 혈액이 몹시 뜨거워졌던 듯했다.


나의 의식은 또렷했다. 응급상황인데 오히려 시간은 더디게 가는 느낌. 드라마와는 매우 달랐다. 의식을 잃었다가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난 뒤 가족과 감동적인 재회를 하는 일은 없었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지금 이대로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다면, 병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지독한 공전을 끊어낸다면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철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때는 그랬다. 내가 고삼을 놓아버릴 용기는 지금 돌아가도 전혀 없으니까.


짜잔. 다행히 난 그럭저럭 살아있다. 검사 결과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별 이상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고 추가 검사나 수술, 약 처방도 없었다. 그대로 학교로 돌아갔고 자습도 이어서 했다. 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안심하고 나니 가혹한 일상이 다시 보였다. 별수 없이 공전궤도에 다시 오르니 병원에 다녀오느라 손해 봤던 시간이 보였다. 아까웠다. 계획했던 공부 분량을 채우려고 그날은 평소보다 늦게 잤던 듯 싶다.


성실하다고 미덕으로 여기기엔 배가 너무 아팠다. 그놈에게 이름을 붙이자면 불안 정도가 되겠다. 막연하게 치부하기엔 고생 꽤나 했다. 그렇다고, 고삼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금 좀 나아졌는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그놈이 이놈이 됐다. 불안은 여전히 내 곁에 함께한다. 면접을 보러 가거나 긴장될 때면 어김없이 배는 아프다. 변화나 교훈이 기대될 수도 있을텐데 유감스럽게도 꼭 그렇진 않는 법이다.


어찌 됐든 대학을 갔다. 내년이면 4학년이니 취업이 조금 걱정되고 오늘은 시험을 두 과목이나 쳤다. 여전히 시험을 치는 날 아침이면 온갖 시름 하며 화장실에 간다. 해우소는 옛말이다. 근심은 풀리지 않고 세상사의 끈을 놓지도 못한다. 조금 바뀐 게 있다면 그런대로 지나갈 것이라 여긴다. 경험이 조금 쌓였나 보다. 불안을 떨칠 수 없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내 모습이라고 썩 괜찮게 여긴다. 이런 난데 어쩌겠나.


여전히 조류의 흐름 속에서 나는 요동칠 듯하다. 고삼이라는 그믐달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지만, 또 다른 상현달이 서서히 보인다. 빈도는 조금 줄었지만, 파도는 여전히 굽이친다. 밀물과 썰물은 넘실대고 나는 주로 휩쓸린다. 그래도 언젠가 반드시 멈춘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가끔 내가 너무 힘이 들 땐 강박을 내려놓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배는 아프지만, 괜찮다. 내가 어찌할 바 없는 파도를 막으려 하지 않는다. 방파제를 쌓아두지도 않는다. 언젠가 그칠 것이라 믿고 내 안의 고요함을 믿는다. 폭풍이 오더라도 휩쓸리지 않는 나만의 주관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그까짓것 우습다는 듯이 파도 위의 잔잔한 물결이 되어 유유히 떠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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