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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느린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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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20. 2019

울다가, 웃다가

나의 유년은 울었다가, 웃었다가 한 감정으로 덮여있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기억을 쌓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년이나 지금이나 감정의 파도에 사정없이 휩쓸리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언젠가 잠잠해진다는 걸 깨달아가며 커가는 듯하다. 그렇게 퇴적하는 나의 현재가 두터워지길 기대하며 고된 삶을 버틴다.


유치원을 처음 갔던 날은 세상에 홀로 던져진 최초의 기억이다. 어머니와 떨어진 게 서러워 울었다. 알록달록한 풍경도 낯설었고, 따뜻했던 분위기도 차가웠다. 적응을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유치원을 1년 더 다녔던 건 그래서였나보다. 여전히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떨어질 때면 나는 줄곧 운다.


조류를 뜻하는 '꿩'이라는 단어를 어머니에게 배운 날, 나는 벽에 머리를 세차게 박았다. 이것 또한 '꿩'이라고 어머니에게 신나서 자랑을 했다. 바보와 다름없는 아들의 행동이 어머니는 귀여웠단다.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미소는 창밖을 쓸었던 바삭한 햇살을 닮아 지금도 나를 더듬는다. 아들은 더 이상 바보일 수 없어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논리와 지성을 무기로 갈고닦아야 한다고 하지만, 참을 수 없이 그리울 때면 그때처럼 웃는다.


어머니는 꽤 오랜 세월, 나의 손톱을 깎아주셨는데 나는 또 꽤 오랜 세월, 그럴 때마다 울었다. 철이 늦게 든 것 같기도 하다. 차디찬 금속의 손톱깎기가 나의 일부를 빼앗아 가버릴 듯했다. 손톱깎기를 들고 나를 설득하던 어머니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화를 참는 어른의 표정을 일찍이 배워서, 지금도 눈치는 빠르다. 무서울 때면, 울 거 같은데 울기 싫을 때면, 피하거나 도망 다니곤 한다.


유년과 지금 모두 나의 현재라는 생각이 든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사랑에 울고, 창가에 걸린 오랜만의 구름이 반가워 웃고, 사랑하는 사람의 쌀 냄새가 그리워 운다. 그다지 성장하거나, 교훈을 깨달은 것 같지는 않다. 감정에 휩쓸리는 건 똑같지만 파도가 몰아쳐도, 해일이 일렁여도, 폭풍이 쳐도, 바다 그 자체가 되어 가라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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