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슬프지만.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노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내 혈육을 사랑했노라, 친구들을 사랑했노라, 나와 닮은 사람들을 사랑했노라,
두려워 떠는 그 사람들을 사랑했노라, 외로운 인생에 피투성이 되었던 너를 사랑했노라,
나와 너희가 천국에서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노라! 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하나님이 나를 시급하게 만나주시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아빠의 삶을 똑같이 살아냈을 것이다. 나의 신랄한 증오를 대대손손 물려주었을 것이다.
'넌 나처럼 살면 안 돼.' 분노하는 법을 나와 똑같이 생긴 나의 자식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8년이 걸렸다. 그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풍파 속에서 거칠게 사랑을 배운 사람이었고, 얼결에 가장이 되어 딸을 낳아 아빠가 되었던 사람이었고, 가족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괴로워했던 40대 청년이었고, 나를 잘못 사랑했을 뿐이지 안 사랑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
엄마의 사랑도 그랬다.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가정을 지키고 씩씩하게 살아내는 것. 154센티미터도 안 되는 우리 엄마는 참 강했다. 그리고 내 여동생과 그 혈육 민진이(사랑하는 나의 첫 조카).
동생은 나와는 달랐다. 같은 환경을 겪어냈음에도 참 사랑이 많고 기본적으로 엄마가 될 자질이 갖춰진 아이였다. 난 동생이 조카 민진이에게 주는 사랑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민진이가 내게 준 사랑에 시시때때로, 감격한다.
나를 보면 까르르 웃으며 뒤집어지고, 내 눈을 바라보고, 내 품에 자신의 온몸을 맡기고, 태어나 처음 듣는 소리를 들었을 때 깜짝 놀라며 나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 울적해하는 나를 눈치채어 귀염 떠는 모습,
그리고 매일의 이별에서.
내일 볼 것처럼 돌아서는 게 아니라 마지막 인 듯 끝까지 바라봐주고 시선에서 나를 놓치지 않아주는 것.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나도 이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자문해보았다. 소스라쳤다. 기도하고 있지 않음에 놀랐다. 거룩한 두려움으로 이들과 천국에서 만날 것을 고대하며 기도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하나님, 내가 그들을 사랑했다고-감히 말할 수가 없어요.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단 한 사람도 온전히 사랑하기가 힘든데 하나님은 우리 육십억 인구를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사랑하신다고 하니, 할 말 없는 인생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기도하며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해요. 서로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 명령대로 살아가길 바라요. 사랑 없는 제게 이렇게 사랑 많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여.
-저는 여전히 슬퍼요. 온전히 사랑 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2016년 8월 30일의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