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Studio Sep 08. 2016

성수동 밤거리에 흔들리는 우리 중심엔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담대한지요.

우리 청년들이 세상이 주는 우울한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물여덟. 여자. 1년 전, 하고 있던 영화일을 그만두고 현재 카페 종업원. 모아둔 돈 없음. 뚜렷한 직업 계획 없음. 학자금 대출 아직 남았음. 결혼 계획 없음. 집안사람들 모두 지극히 평범. 특출 난 재능 없음. 나열된 사실들만 보면 이미 저 밑 지구 핵까지 함몰되고도 남았음. 그러나, 아직, 괜찮음.

      

늦여름, 친구들과 함께 성수동 밤거리를 걸었다. 나는 이제 막 수동 필름 카메라를 배워 재미를 붙이던 참이었다. 50mm 렌즈를 통해 본 나의 친구들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스물셋. 스물여섯. 스물여덟. 듣기만 해도 위태로운 이때에 우리가 만나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는지, 필름에 담아 주고 싶었다.  


우리들의 첫 포켓볼, 신원, 지영, 서연


신원이는 피아노를 치는 친구인데, 왁자지껄하지만 굉장히 섬세하다. 청소년부 수련회 기도회 시간에 그저 건반을 치고 있는데, 눈 앞에 한 아이가 보이더란다. 덩치가 크고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라 그대로 폭력으로 분노를 쏟아내는 아이였다. 결국 소년법정까지 다녀왔다. 

'너는 왜 화를 참지 못하니?'라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 정도 화가 난다면, 저는 하루에 수십 번이고 화가 나요. 다 참다가 그중에 한두 번 화를 못 참아낸 것뿐이에요.' 아이는 온몸으로 피 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폭력성과 싸워내었다. 신원이는 그 아이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 아이가 쏟아내는 눈물과 '하나님, 살려주세요!' 울부짖는 기도 소리를 들었다. 피아노를 치는 신원이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그 아이와 같이 울었다고 한다.  


지영이는 유럽 여행 중이다. 그 친구의 에너지에 언제나 감탄한다. 또한 그녀의 순수한 감탄에 감탄한다. 

위로부터 오는 확신으로 그녀는 많은 일을 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20대에 지영이를 만난 건 선물이다. 나에게 항상 '부영아. 글 써.' 진심으로 말해준다. 그녀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참 많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렇구나.' 정도였는데 지영이는 그 이상이었다. 왜 일까?

단순히 여행이 부럽다기보다, 그녀의 성장이 부러웠다.

영리한 지영이는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 많은 것을 흡수하고 감탄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올 테지. 나에게 도전이 되는 친구. 그리고 사랑을 주는 친구.  


서연이는 참 어린아이 같은 아이다. 아빠 아버지에게 가장 순수하고 친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친구. 지금은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배우고 있다. 서연이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안다. 환자들과 한바탕 음악치료를 하고 온 그녀는 걸걸해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언니.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건. 이를테면 이런 거야. 그 오빠가 언니한테 귀엽다고 했을 때, 아-여자로는 안 보이는구나. 가 아니라 그 오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나는 귀여운 사람이었나 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사하게 그 마음을 받는 거.' 우리는 자존감에 대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한참을 머물렀던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포기하라고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3포. 4포. 5포. 

당장 '현재'가 없는데 더 나은 삶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걸까?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포기하면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본질이 비본질에 잠식되고 함몰되어 가고 있다.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비록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이 친구들과 나눈 대화, 함께 나눈 감정,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목격한-각자의 상처에 피 흘리던 사람들이 살아나는-광경들이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해 주고 있다고 믿는다. 가장 건강한 청년의 때를 보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성수동 밤거리를 걷던 우리의 중심엔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찬란히 빛나는 걸까?

각자의 삶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고 들어줄 서로가 있어서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