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지만 영원이 될 이야기
얼마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로이터 사진전: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를 보고 왔다.
세계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영국 로이터 통신사의 주요 사진 450점을 전시해 놓았다.
역사, 정치, 사회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다기보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면서도 열심히 봤다. 참 치열하다. 우리 인간사.
그중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사진의 기자 이름은 고란 토마셰비치 그리고 다미르 사골이었다.
보도사진은 관심을 촉발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길게 보면 세상이 한때
얼마나 위대하고, 잔인하고, 행복하고 참담했는지 그리고 불공정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킨다.
(인터뷰에서) 보도 사진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곧 진실을 말한다.
다미르 사골 Damir Sagolj
나의 사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취미로 시작했고 지금은 꽤 재미를 붙여 찍고 있다.
디지털보다 필름이 좋은 것은 따라올 수 없는 분위기 때문도 있지만 찍을 때, 기다릴 때, 사진을 드디어 마주했을 때, 사람들에게 본인의 사진을 나누어줄 때, 또 그들이 자신이 찍힌 모습을 보고 기뻐할 때, 매 순간 좋은 것이 이유다. (찍은 필름이 통째로 날아갔을 땐 심장에 고통을 느낀다. 필름 사진은 내 오감을 깨운다.)
주로 내 주변 사람들을 찍는데 모아놓고 보니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무언가를 하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가 찍힌다. 내가 그들을 부르고, 그들이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을 참 많이 기록했다.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 사진을 전달해 주었을 때 감출 수 없이 기뻐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내 표정 보는 거 처음이야."
나와 있는 게 편안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사진에 담겼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제는 영원이 될 이야기가 되었다. 올해 초 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벌써 6개월이 흘렀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 삶에 이 친구가 떠오른다.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고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오르고 나의 죄악이 떠오른다. 불가항력적으로.
나는 여전히 슬프고 하나님이 내게 단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셨더라면, 하고 바란다. 네가 힘들어서 무너지고 있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더라면, 너를 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더라면, 어느 날인가의 주일에는 멀리서 네가 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럼 내가 먼저 뛰어가 너를 안아주었을 텐데, 네가 내게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기회를 내게 허락해 주셨더라면, 하고 여전히 바란다.
그녀의 사명을 이어받아 나도 생명 구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자꾸만 추락했다. 내 삶을 강타했던 죽음들이 나를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But. 그녀의 죽음이 생명력 있게 내 삶을 끌어올린다.
추락하지 마라 부영아.
로이터 사진전에서 보았던 그 치열한 인생들이 그때, 그곳, 그 사건 가운데 존재한 이유가 분명 있듯,
나도 이 땅에 이때 이 삶 가운데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테고,
우리 삶이 전쟁터라면 나도 그들을 위해 기록을 남겨야겠다. 우리가 존재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었으며 우리의 삶으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전했는지. 피 흘림 가운데 어떻게 기도했는지, 우리의 죄인 됨을 어떻게 고백했는지, 또 어떻게 변하고자 했는지, 무너짐 가운데서 살린 생명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찰나의 순간이지만 영원이 될 이야기. 이게 나의 진실이고 곧 아름다움이다.
2016년 9월, 이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