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인간을 깊이 사랑한 대문자 T 인간의 따뜻한 대처기술 안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만, 그것을 할 수가 없어.”
나는 ‘충동성을 동반한 부주의 우세형 ADHD’를 진단받았다. 적정 거리에서 나를 보는 사람은 ‘설마’라고 하고, 근접 거리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역시’라고 한다. 이제 와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빼박 ADHD 였는데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학업 성적도 (벼락치기로) 그럭저럭 유지했고,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도 (발등에 불똥 떨어질 때) 그럭저럭 해냈다. 아 물론! 공부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직업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기는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했다. 그냥 안했다. 내 삶이 위기에 빠지던 말던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으니까 안했다.
삶이 그럭저럭 유지되는데도 내면 한구석엔 늘 실패감이 들었다. 다들 여가 시간에 공부도 하고, 자격증 시험도 보고, 운동도 하고 목표를 정하면 힘들어도 그것에 따라 사는 것 같은데 난 그게 안됐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무기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주제에 빠져 원래 하려던 공부를 쉽게 잊었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고민을 나눌 때 친한 언니가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ADHD를 진단받은 지, 글쎄 수년이 흘렀다.(정확한 날수는... 찾아보기 귀찮다) 지금은 약 복용과 나름의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책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표지만 보면 핵노잼 전공서같은데 그 내용은 정말 땅속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다. 제발 읽어보시길. ADHD 인간을 깊이 사랑한 대문자 T 인간의 따뜻한 대처기술 안내서 같달까. ADHD를 깊이 이해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대처기술을 아주 현실적으로 제안하고 독려한다. 저자 2명은 모두 펜실베니아 대학의 성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 및 연구 프로그램에서 성인 ADHD의 평가 및 치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평생 ADHD 인간과 함께한 인간들이란 말이다. 서문에 밝힌 이들의 고백이다.
"(ADHD 환자) 그들의 삶 속에 있는 다양한 역경과 그에 맞서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감동받았으며, ADHD에 맞서고 극복하려는 그들의 정신과 용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기록한 ADHD 환자의 행동 양상을 읽고 있자면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 감탄과 수치심이 동시에 든다. 근데 이제 깊은 공감을 곁들인. 보통 사람들은 ‘ADHD’를 주의력과 과잉행동의 장애 정도로만 생각한다. 대표적 증상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자기 조절’ 혹은 ‘자기 통제’와 관련된 질환으로 본다. 실행 능력의 결함과 동기의 결여 같은 문제 말이다. 즉,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위해 현재의 즉각적인 이득을 미루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란 뜻이다.
이러한 ADHD인들이 조직화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는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CBT)가 있다. 이 책은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것이다. ADHD인들이 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게끔 도와주려고 정말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 이런 인간적인 언어로 조언한다.
“앞으로 나올 각 장에 소개된 대처전략들을 사용해 변화를 시작할 방법을 찾아볼 것을 권장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 과정 중에 조급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변화 과정에서 2~3보 전진하다가 1보 후퇴하기 마련입니다. 변화는 어려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발전을 인식하고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바람은 습득한 안내서 Tool Kit안의 유용한 방법들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자주 많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ADHD 환자들은 할 일을 미룬다’에 그치지 않고 정말 왜 때문에 미루게 되는지를 먼저 이해시킨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대처기술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그래서 이 책은 ADHD 진단을 받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수많은 도움을 주면서도 “아니 대체 왜 미루는 걸까? 미리미리 하면 되는데! 그냥 게으른 거 아니야?” 때마다 낙심했을 주변인들 말이다. ADHD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면 더욱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여러 가지 대처기술이 있지만 가장 핵심은 ‘일일 계획표’이다. 나 역시 기존 습관에 더불어 이 책을 통해 배운 대처기술을 접목해 훠얼씬 효과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게 효과적인 하루란 아침에 하기로 계획한 일을 꽤 수월하게 지켜낸 하루를 뜻한다. 밤에 침대에 누워 ‘오늘 못한 일도 있지만 대체로 계획한 대로 살아냈어. 참 잘했다.’ 스스로 칭찬하며 잠드는 하루 말이다.
ADHD 동지인 친한 오빠가 그랬다.
“ADHD가 너의 캐릭터가 되어선 안돼. ‘난 ADHD이니까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뜻이야.”
ADHD는 인간의 뇌가 존재해 온 기간만큼 오래 존재했을 거라고 한다. 최근 들어 갑자기 생긴 게 아니란 말이다. 다만 의무교육의 출현과 함께 다른 상황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는 행동적, 학업적 문제들이 드러났을 뿐이다. 과거 어느 시점엔 ADHD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조직화된 사회에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겠다. ADHD라고 주눅들 필요는 없고 제대로 알고 관리하면 오히려 럭키비키라는 생각 또한 든다. 난 그래서 ‘치료’보다 ‘관리’라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 ADHD가 주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뭐랄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잘 길들여서 살아갈 때의 이득이 분명 있다. 야생마 길들이기에 있어 때로 1보 후퇴하더라도 그전에 2보 전진했단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 ‘일일 계획표’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말해보겠다.
다음 편 <성인 ADHD, 살 길은 오직 일일 계획표> ②
계획을 위한 시간 계획 세우는 시간을 계획하기
포괄 실행 목록
일일 실행 목록
일일 계획표
ADHD 관리를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