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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래 Feb 01. 2024

11월의 통영 (3)

여기, 지금이어서 좋은 것에 사로잡히기 23.11.07~09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답게 통영에도 카페가 꽤 많다. 검색해 보니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가장 가까운 곳일 수밖에! 미수동방파제를 끼고 있는 카페 '라이트하우스'에 들어가 상자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자세를 잡고 2층 창가자리에 붙박였다. 이제부터 할 일은 성실하고 착실한 등대지기처럼 아무것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통영운하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다. 창 밖으로 작은 배가 긴 판데기를 매달고 이동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 바다에서 뭔가를 작업하는 판인 모양이다. 찾아보니 통영이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라는데 통영신문 기사인 걸 감안해도 여전히 어업이 꽤나 성행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래, 점심은 수산업의 결실을 확인해 보자!


점심으로 복어를 먹으러 갈까 하다가 복국은 너무 서울에서 먹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 생선구이로 선회했다. 생선구이인들 서울에 없겠냐마는 여행지에선 그 지역이 가장 잘하는 음식이나 그 지역에서니까 가능한 신선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오늘의 픽은 신선함이다. 새벽배에서 저렴하게 사온 잡어(?)들을 당일에 바로 구워 내는 생선구이라면 서울에선 어려운 거니까.


금옥식당 (좌)  -  풍화김밥 (우)


오후엔 미륵산 둘레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2시간 반 코스의 숲길 트레킹이지만 계속 바다 전망을 보며 걸을 수 있다고 하여, 중간에 간식으로 먹을 충무김밥도 포장했다.


숙소를 1박씩 예약한 터라 차를 두고 나오려고 스탠포드 호텔에 먼저 들렀다. 혹시 얼리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어라도 보려고 카운터에 가니 다행히 체크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가능하는 답변.


랜덤 옵션인 방은 디럭스더블룸으로 배정받았다. 그렇구나 하고 올라가 보니, 웬 걸. 별다른 정보도 없이 6만 9천원을 주고 예약한 숙소가 너어무 괜찮은 게 아닌가. 급히 검색해 보니 성수기에는 30~40만원대에 팔리는 객실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다면 지금 트레킹을 할 일이 아니다. 미륵산엔 언제든 또 갈 수 있지만 이 객실을 6만 9천원에 누리는 것은 오늘이 아니면 안 돼! 지금이야! 14층에서 바라보는 한산도 뷰는 또 왜 이리 예쁜지. 신이 난 우리는 한참을 호들갑을 떨다 소파를 끌어다 창가에 앉았다.


배가 불러 맛만 보려고 열어본 충무김밥은 또 왜 이리 맛있는지. 멈추지 못하고 한 개만, 한 개만 더 하다가 절반 이상을 먹어버렸다. 그렇다면 또 걸어야죠, 암요. 미륵산 대신 호텔 주변으로 정비된 바다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한산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꽤 자주 운행하는 것 같았다. 작은 어선들과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고 계속 걷는, 계획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바꿔버리는 우리식 통영 여행이 계속 됐다.



통영국제음악당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찍고 되돌아와 다시 차를 몰고 통영중앙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어제 뒤통수만 봤던 수군통제영 앞모습을 다시 한번 구경하고, 저녁으로 먹을 고등어와 전갱이 활어회를 떴다. 고등어회는 제주도 동문시장에서 여러 번 먹어보았기에 별 기대 없이, 배가 불러 선택한 메뉴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신선도 차이인지 계절 차이인지, 어쩌면 예약은 했으나 예정에 없던 호텔방의 쾌적함이 가미된 탓인지 모를 달콤함이 조금 더해진 느낌이었달까.




창이 동쪽으로 크게 나 있어 침대 위에서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아침. 다시 아침이 밝았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감상하다 설핏 선잠에 빠지며 게으르고 보람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통영을 떠나는 날이다.



통영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다시 서호시장. 통영 명물이라는 '우짜'와 예로부터 많이 먹었다는 삐떼기죽이다.


가난했던 시절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도 먹고 싶어 한 누군가가 우동에 짜장 소스를 얹어 먹은 게 3대를 거쳐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는데, 어차피 우동도 끓이고 짜장 소스도 만들 거면 그냥 우동과 짜장을 각각 먹지 왜...? 동시에 빠르게 맛보고 싶었던 걸까...? 짜장 맛이 나는 멸치우동, 멸치우동 맛이 나는 짜장은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의 조합 치고는 조금 오묘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무릎을 치며 눈이 커질 맛은 아니다. 맛이야 워낙 개인차가 크니 뭐라 더 설명할 필요는 못 느끼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정말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우동과 짜장을 한 입에 넣은 딱 그 맛이다. 그래도 안 먹어 보곤 아는 척하기 그렇고 어차피 집에서는 안 해 먹을 테니, 통영에 갔을 때 간식 삼아 한 번쯤 먹어볼 만은 한 정도라 정리할 수 있겠다. 삐떼기죽은 고구마와 콩이 들어간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다. 너무 당연해서 이상한 추천 같지만 고구마와 콩을 모두 좋아하는 분이라면 맛있게 먹을 맛이다. (하하)


아침을 재미있게(?) 먹고 마지막 코스로 나섰다. 동피랑이다.



통영으로 젊은 친구들과 예술가들을 불러 모은 힘이 응축되어 있는 곳. 최초의 벽화마을로 그 유명한 날개 그림이 시작된 그곳이다. 첫날 갔던 서피랑보다 좀 더 넓은 구역으로 볼거리가 많고, 구석구석 애정 어린 손길이 아주 많이 닿아 있어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피랑도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고민이 깊다는 뉴스를 본 적 있어, 막상 들르기 전엔 너무 변질되거나 상업화되어 감흥이 떨어지진 않을까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속내까지는 모르겠으나 관광객으로서는 통영의 대표 관광지로 아직까진 가볼 만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우리처럼 골목골목을 휘저으며 느리게 걷고 오래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말이다.


동피랑의 정상 동포루에 오르니 통영 토박이라는 여성분과 친구들이 뒤따라와 같이 동포루에 앉았다. 그리곤 듣게 되는 통영에 대한 이모저모. 통영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부터 예전엔 어땠는데 지금은 뭐가 바뀌었는지 뭐가 그대로인지, 동쪽에서 귀인처럼 나타난 뜻밖의 가이드의 설명을 한참을 엿들었다. (아쉽게도 이젠 기억이 안난다)


다니다 보면 여행지마다 신나서 떠드는 분들이 있어 덕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참 안 궁금하고 쓸데없는 얘기를 시끄럽게만 떠드는 분을 잘못 만나면 거기가 어디든 언짢아지기 전에 빨리 자리를 뜨는 게 능사지만, 가끔 조곤조곤 설명하는 분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걸음 속도를 맞춰가며 일행 아닌 일행이 되곤 한다. 비록 이 글은 온라인에 있어 현장에, 딱 그 타이밍에 불쑥 등장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이야기도 통영 여행을 떠나기 전 마중물을 놓은 가이드 역할이 된다면 몹시 기쁠 것이다. (아니면 나라도... 나중에 들춰 보고 추억하며 다시 한번 통영으로 훌쩍 떠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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