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나와 라디오뿐. 고요함을 넘어 삭막함으로 넘어가는 그 공허함을 겨우 가려줄 정도의 소음만이 나를 너무 고독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여유라고 부르는 이 시간, 아이들의 등교 후 맞이했던 바로 그 시간과 난 이제 그만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10개월간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지난 10개월간의 육아휴직은 내게 수없이 많은 경험과 생각을 나열시킨 순간이다.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었고 아내의 고충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좋은 아빠였을까?라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코로나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방패 삼아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떠올리며 말이다.
그러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우리 가족과 직장 내 동료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덕분에 아버지라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고 가족의 울타리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 감동할 수 있었다.
휴직이 끝나더라도 아이들과 지금까지 함께 했던 것들을 배제하고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방학을 지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일정관리 매니저가 될 것은 당연할 것이고,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조잘거리며 내게 하루의 일과를 전달해줄 아이들과의 대화도 여전할 것이다.
반면 복직을 앞두고 조금 떨리고 긴장된다. 무뎌진 감각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현장에서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하고 달라졌을 사무실 분위기 적응도 내게 숙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의 포커스를 우리 집 아이들에서 청소년으로 옮기는 과정이 순탄할지 걱정이 된다.
다가올 2022년, 난 다시 청소년지도사로서 현장으로 출근한다. 앞치마를 벗어버리고 직원증을 목에 거는 것으로 주요 역할이 변화될 예정이다. 너무 어설프지 않게, 또 너무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길 바라본다. 물 흐르듯 유연하고 무리 없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