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찐만두 Sep 11. 2024

나는 그렇게 91년생 이혼녀가 되었다.

#16. 직업군인이 더 힘들까? 전업주부가 힘들까?

엄마가 선물해 준 차량은 내가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안녕을 바라고 최대한 아이를 위해

주말에는 만나자고 하고

나와 아이는 친정으로 상대방은 충청도로 향했고

나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엄마의 도움으로

아이의 밥을 먹이고 자차로 왕복 50분 정도의 운전을 하고

등/하원 텀이 짧아서 운동 이런 사치는 부릴 수도 없었다.

마냥 친정엄마집에 얹혀살기가 미안해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나름 갠다고 개다 보면

다시 30분을 운전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게 되던 와중,

상대방은 바쁘다는 이유로

새벽 내내 이제 잔소리 없이 주식하고

주중에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엉망적인 패턴을 가지고 나선

나에게 말하였다.


"아 차가 없으니 군부대 내에서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애는 유치원을 어떻게 가라는 거야?"라고

되물어보니

"모닝이라도 하나 사야 할 것 같아.

어차피 중고로 사서 쓰다가 부대에서 필요한 사람한테 넘기면 돼"라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소리를 하더니

새벽 내내 주식을 하니 아침에 일어나기는 어려웠는지

기어코 또다시 할부를 해서 중고차를 사고야 말았다.


중고차를 사면서

내가 힘들면 종종 올라온다고 했지만

"경차는 고속도로 타기 좀 어려울 것 같아서"라며

단 한 번도 아이와 나에게 스스로 경차를 끌고 온 적이 없었다.


다행인점은 아이는 별탈없이 유치원에 적응을 잘 하였고

올라오면 일하던 엄마가 주말마다 상대방 밥하고

빨래해주고 이부자리 챙겨주는 꼴이 보기싫어서

매 주마다 아이를 데리고 충청도를 향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의 한해는 무탈하게 지나간 듯 하였다.


이제 1년이 지나가니

나도 전세라도 구해서 그냥 평범하게

열심히 모으면서 살아가면 되겠다.

이정도 가족과 함께 떨어져서 살아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알겠지라고 생각을 하며

나는 가장 제대하는 날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세번째 관사생활을 마무리하던 쯔음

2022년 제대를 준비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해보았다

"우리 이제 주식 다팔고 퇴직금까지 하면

보증금은 어느정도되는거야? 집 알아봐야해서"


내 질문에 한동안 답이 없던 상대방은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퇴직금 그냥 주식 좀만 더 하면 오를 것 같은대

어머님집에 우리그냥 셋이 좀 더 살면 안되?

군에는 더 있기 싫은대 이미 대기업도 합격했잖아

이제 나 연봉 1억이야. 이정도 대출이랑 퇴직금은

아무것도 아닌돈인거야. 이 주식은 우리 미래고 노후야"



이전 15화 나는 그렇게 91년생 이혼녀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