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렇게 시작된 소송에서 보여진 상대방의 인성과 버려진 모녀
아이의 하원 전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이렇게 되기 전 친정엄마에게 말하였고
몇 달간은 엄마가 걱정을 하였지만
결혼을 허락할 때보다 더 단호한 나를 보면
나를 더 지지해 주시고 믿어주시며
오히려 그렇게 보낸 나에게 미안하다면서
몇 달을 많이 힘들어하며 눈물을 보이셨었다.
그런 모든 이벤트의 날들에 시간이라는 건 흘렀고
나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거주하고 있던 집 문제는
이미 그전에 친정에서 빌린 돈이기에
변호사와 함께 진행하면서 집은 다음 세입자를 구했고
아이의 하원을 지인에게 부탁한 후,
업체가 도착한 아침부터 싹 진행히 되었다.
다음세입자의 사전점검과 그리고
아이와 나의 짐을 챙긴 후, 도착한 업체를 통해
미리 싸둔 짐들을 하나씩 이동시켜 두었다.
그리고 아주 긴 장문의 편지를 적은 후,
나는 그렇게 주식 팔아서 샀다고 정말 떵떵거리며 준
120만 원 상당의 반지를 편지 위에 올려두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
드라마처럼 따라란 하면서의 미련 따윈 없었고
아 정말 이제 시작이다.
나 마지막까지 잘할 수 있겠지? 와 나 어쩌다가 이런 꼴이지?라는
자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날은 아이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향하였다.
모든 기관마다 중단을 요구하였고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인 내 딸을 뺏기기라도 할까 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법를 지키는 선에서 실행하였다.
그렇게 나란히 앉은 저녁식사에
아이는 엄마랑 둘이서 외식이라는 거에 신이 났고
꾸역꾸역 욱여넣으면서 뿌엥하고 울고 싶던 마음을 누른 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에게 조심히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우주보다?"
"당연하지 네가 미운 날도 있지만 그건 생각도 안 날 만큼 사랑해
그런데 엄마는 너와 둘이 살고 싶어"
"왜?"
"엄마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많이 미안해.
그렇지만 하나는 약속할게 아빠가 너를 만나는 날도 있을 거고
엄마는 너와 함께 하는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할게"라고 하자
6살짜리 아이의 대답은 나의 다짐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만 내 옆이라면 난 좋아. 사실 나 아빠랑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휴 그럼 이제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안 오고
엄마랑 나 둘이 맞는 거지?"
그렇게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러 가게 되었고
도착지에서 짐을 푸는 동안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해서
지인을 통해서 집이 비워졌는지 좀 확인을 해달라고 하였다.
그리곤
충격의 동영상을 받았다.
동영상 속, 본인의 옷 그리고 정복, 대기업에서 준 입사선물 그리고 셋톱박스만
가져갔고, 바닥에는 아이 사진을 그냥 다 엎어뜨려두었으며
목숨 걸며 함께 일한 동기들이 마지막으로 써 준 롤링페이퍼도 다 버려진 집상태
와중에 내가 선물한 명품지갑까지 야무지게 챙겨간 집 모습을
할 말을 잃었고
난 다시 지난 나의 몇 년을 후회만 하였다.
난 대체 왜 그렇게 시골에 처박혀서 살았지?
이 사람은 이 대기업루트를 쉽게 가기 위해서
가스라이팅 잘될만한 사람을 찾다가 나 그냥 얻어걸렸나?
애는? 애는 안 보고 싶나? 애 사진을 왜 바닥에 처박아둔 거지?
그동안 월급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꼴배기 싫었을까 등
말로는 형용이 안 되는 분노와
병신같이 다 참고 살던 나 자신에게 분노가 터졌지만
다행인 점은
아이는 새로운 지역에서 유치원도 학원도
너무 행복하게 다니며 상담치료에서도
아이의 말처럼 학업적인 일로 상대방에게
내가 없는 날에만 혼이 나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현재는 엄마와의 안정감이 정확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아이는 그냥 나 혼자 낳은 나의 딸이라고 생각하였다.
내 딸이야 이 아이는 내 딸.
곧 죽어도 우리 딸이 아닌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