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도 못 본 척하는 무시가 그나마 나은지,
아예 안 보는 무심이 덜 속상한 건지.
속상한 마음을 담아 친구가 물었어요.
하루가 다 되도록 톡 1이 없어지지 않는 쪽과, 1이 없어져서 분명 읽은 게 맞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쪽, 어느 편이 덜 속상하냐고요.
저는 1이 그냥 살아있는 편이 나은 쪽입니다. 놓쳐서 확인하지 못한 편이, 읽고도 ♡과 같은 반응도 없는 편보다는 낫다고.
친구는 반대라고 하네요. 엄연히 오픈챗방이 따로 있는데, 가까운 지인에게서 톡이 온 걸 어떻게 확인조차 하지 않냐고.
보편적으로 어느 쪽이 그나마 용서가 된다는 건 별로 의미 없을 거예요.
내 소중한 사람이 어느 쪽에 더 속상해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지요.
목발을 짚으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더운 여름날에 가장 곤란한 게 쓰레기 처리예요.
인류를 구원한 에어컨 덕분에 몸이 더운 건 전기요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하루라도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보글보글 발효를 시작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목발 2주 차에게 참으로 어려운 상대입니다.
봉지를 잘 아물리고 플라스틱 과일 빈통에 담아 꼭꼭 닫아놓고, 현관문 바로 앞에 갖다 놓습니다. 나갈 때 꼭 좀 부탁한다는, 부담스러운 웃음을 가득 담아 당부도 하고요.
아.. 설마 했지만 역시
두 손이 가뿐하게 그냥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보고도 일부러 그냥 나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니, 거의 확실히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니에요.
단지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겁니다. 부탁을 들었던 말은 당시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거고요.
'쓰레기를 버리자'라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평소처럼 집을 나서면서 눈앞에 있는 물체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듣지 않아.'라는 무시가 아니라,
'... 아!' 하고 뒤늦게 알아채는 무심입니다.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 무심에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비록 한두 번이 아닌 서너 번, 아니 수십 번이라고 해도
마음이 담기지 않는데 애써 관심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싶어요.
과자 먹은 후에 봉지를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아무 생각 없음',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아무 생각 없음'
젖은 수건이 겹쳐져 있으면 냄새나니까, 펼쳐서 바구니에 얹어달라는 말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 '아무 생각 없음'에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화내지 않고
"신경 좀 써 줘요. 이렇게 자꾸 반복하면 나도 서운하네." 하고 웃으며, 나 또한 수십 번이고 반복했다면 어땠을까.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행동에
속상한 마음을 가득 담아 반응하지 않았다면.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서로 그토록 많이 상처 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관심과 배려를 받으면 좋지만, 주지 않는다고 화낼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톡으로 물어본 말에 대답이 없길래 퇴근 후 다시 물었습니다.
톡 확인하셨던데, 답톡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바빴나 보다고.
"응? 그거 물었었어?"
아, 1이 없어져도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네요.
무시하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