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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고 얇은 유리그릇

by 위드웬디

난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냥 작기만 한 것도 아닌, 얇은 유리그릇이라 조금만 건드려도 깨져버리기 일쑤였지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겁 많고 속 좁은 내가 빤히 보이는데, 그렇다고 수긍해 버리면 정말 그릇을 키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사람으로 사는 자신을 상상하고, 그릇이 큰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삶에 익숙해지면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죠.


억지로, 남들만큼 담으려다가 와장창 깨지고 나서야 알았어요.


나는 작은 유리그릇이야.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키울 수 없어.

그릇을 여러 개 만들자.
깨져도 남은 게 있도록.




투자하는 데에 간이 참 작았어요.

이십 대 중반, 약국에서 일하던 시절 제약주 붐이 불었어요.


"그 종목을 이때 사서 이때 팔았어야 했는데."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날리고 나서, 거의 몇 달 동안 후회하느라 잠을 못 이룰 정도였어요.


'그때 후회만 하지 말고, 주식과 경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했더라면 지금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 텐데...'

라고 또 후회하는 것 보면 진짜 후회쟁이, 작은 그릇 맞지요.


주식이라는 한 종류의 투자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마음을 다 주어서 그랬을 거예요.

나는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걸 이제 아니까,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나누어서 투자를 해야겠다 해요.


투자 그릇을 여러 개 만들어서 하나가 와장창 깨지더라도 마음 쏟을 다른 그릇들이 남아있도록.



그릇이 작다 보니 품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참 적어요.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주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사람이에요.


많은 분들에게 골고루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서도 본인의 삶을 살뜰하게 일구어가시는 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제가 초콜릿 세 알 정도 담으면 꽉 차는 유리 접시라고 한다면,

넓은 보자기나 이불과 같아서 어떤 사람이 와도 품어주시고 그 사람의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분들이 계세요.


일 처리 능력이나 돈 버는 능력의 그릇은 작디작아도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사람을 품는 그릇이 작은 건 참 많이 속상해요. 이건 정말 키우고 싶거든요.


이 또한 그릇을 많이 만드는 게 방법이겠구나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부서져도 남은 다른 그릇들이 있도록,

초콜릿 세 알씩이라도 담아서 삶의 단 맛을 느끼시도록 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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