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10년 넘게 주야장천 문제지를 풀고, 정답지를 보며 채점하며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무사히 대학에 입학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어른이 된 후에도 남이 만든 답지에 따라 내 생각과 삶을 바꾸려 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들은 말 그대로 선생(先生)님이니까, 내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내가 틀렸다고 여겼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저희 상황이 이러이러하고, 제 생각이 어떻다는 말씀을 차분히, 납득하실 만큼 말씀을 드릴 걸 그랬어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유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이해하실 수 있는 합리적인 분인데.
'모두를 위해서, 어른 말씀은 꼭 들어야 하는 거다'라는 남이 만든 답에 내 생각을 욱여넣은 탓에 분노만 쌓아갔지요.
그 이후로 시댁에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내 자유의지를 묵살하는 강요'로 듣기 시작했고요.
내가 가진 내 삶이라는 답지를 묵살한 건 오히려 나인데.
남편의 사주에 따라 이사를 하라고 강요하시는 말씀에 불만을 제기한 후로 시어머님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전학까지 해야 하고, 앞으로의 실거주를 이용한 제 투자 계획까지 모두 무시하는 처사에 강하게 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게 부모에게 좋은 거라고,
아내가 행복해야 남편도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강요에 따르고 숨죽이며 사는 엄마가 과연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 수 있겠냐고 차분히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만든 답지에 억지로 맞추는 건 나에게는 오답이라고,
내 삶이라는 시험을 망치게 하지 마시자고 그때 용기를 냈어야 했습니다.
그간 이룬 재산을 거의 다 날린 지금이 아니라.
지금 보면 이보다 더 똥 같은 소리가 어디에 있나 싶어요.
"그럼 강사님의 한평생은 일론 머스크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보다도 쓸모가 없네요."라고 일갈해 주었어야 했는데.
먼저 부동산 투자 좀 해 보고, 돈 좀 벌었다고 자신의 길이 모두 맞다며 강의를 하는 사람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랐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그 말들을 걸러 듣지 않고 다 머리에 새기면서.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말을 듣고 내 근로 소득을 무시했어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조급하게 투자금을 밀어 넣었고요.
수익형 부동산의 가치가 곤두박질치자 '그런 위험도 감수하지 못할 거면서 투자를 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어리석은 나 자신만 탓했어요.
남이 하는 말이 오답일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말을 잘 듣는 건 상대방에게 편리한 것이지, 내 삶이 좋아지는 요소가 아니었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나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삶을 묻는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