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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Jul 22. 2024

교체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나

어릴 적 읽은 책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라는 질문에 한 사내가

"예, 어머니는 단 한 분뿐이시고,

아내는 얼마든지 다시 맞이하면 되니

당연히 어머니 먼저 구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전래 동화가 있었습니다.

사실 결론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참으로 효심이 깊은 아들이구나."라며 칭찬을 했었는지,

그 어머니가 "나는 이미 오래 살았고, 아이들에게는 며느리가 어머니이니 네 아내를 먼저 구해야 하느니라."라고 했었는지요.



결론이 어떻든 그 사내의 대답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내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존재인 건가?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동반자로서 구색을 갖추기 위한 도구인가?역할을 잘해내지 못하면 교체되는 것이 당연한 건가?


잘해내지 않으면 너는 교체된다.
너를 대신할 사람은 많다.


사람을 도구 취급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분명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와 며느리는 죄인이 됨이 당연한 때였어요.

제가 조선시대, 원시시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30년 전만 해도 남존여비가 팽배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인식의 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고요.

무엇이든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어린 저에게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잘해내지 못하면 교체당할 것이고,

못해서 교체당할 바에야 나 스스로 없애버리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의 씨앗까지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는 한 해에 100만 명 가까이 태어나고, 사람이 넘쳐나던 때였으니까요.

귀족과 같은 적은 비율의 귀한 댁 아가씨들을 제외하고는,

대체 가능한 풀이 수없이 많은 노동자의 딸은 교체되어도 아무 말 할 수 없었어요.


괜히 시끄럽게 문제를 만드는 골칫덩이보다는

불합리한 처사에도 '순종'하고 따르는 도구로서의 아내들이 다루기 편했겠지요.

유능한 일꾼이 필요했던 사회에서

암암리에 그러한 인식을 심어주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고장 난 도구를 애써 고치기보다

내다 버리고 새로 도구를 가져다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사람이 흔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대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지금의 출산율 절벽은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음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해법이 집값 하락이나 교육비 절감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한 존재이고 존중받아야 함을 인식시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부자와 다를 바 없이 존중받는다면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전래 동화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사내의 삶도 사실 안타깝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교체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아내가 그를 사랑할까요?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껍데기뿐인 삶입니다.

그 이유가 단지 집안을 위해 '훌륭한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라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사람을 먼저 귀하게 생각한다면

그 자신도, 아내도, 

단 한 명뿐인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인 아이들도,

자신이 살기 위해 며느리를 저버리지 않아도 되는 시어머니도

모두 귀하고 값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사내는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냐구요?

뭘 구해주기를 기다려요, 스스로 수영해서 나와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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