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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위드웬디

"우리가 어떻게 강남에 가서 살아? 말이 돼?"


시어머님과 함께 철학관에서 사주를 보고 온 애들 아빠가 통보하듯이 말을 했다. 이제 강남으로 이사 갈 거라고.


얼마 전 강남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 누나도 있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강남에 터를 잡는 게 좋다는 말로 뒤늦게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주에 강남에서 사는 게 좋다'라고 했다는 것임을 나는 안다.


직장이 가깝기 때문에 지금 사는 신축 아파트에 만족해하고, 종교적인 이유에서라도 사주를 믿지 않는 나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님을 안다.


시어머님이 철학관에서 한 말을 따르실 것이고,

애들 아빠가 시어머님을 따를 것이고,

나는 '시댁 어르신 말씀을 듣는 게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친정 엄마의 말을 따르게 될 거다.


'강남에서는 부자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거야.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고. 무엇보다도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니까, 좋게 받아들이자.'


좋은 마음으로 반포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전세를 들어온 첫날, 수돗물을 틀자마자 나온 초콜릿색 녹물에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강북의 신축 아파트보다 좁은 낡은 아파트에, 전세금을 5천만 원이나 더 얹어서 주고 왔는데도 내가 맞이하는 것은 피비린내를 풍기는 녹물이구나.


돈 없이 감히 부촌에서 살려면 이런 걸 견뎌야 하는구나.


그때는 몰랐다. 이 정도 견딤은 아주 귀여운 수준이라는 것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내가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한 것을 선택해야 함을.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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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nterest James Yun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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