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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Aug 31. 2024

영영 모를 여름의 너를 그리며

여름의 네가 참 궁금했었는데, 알 수 없는 채로 여름이 다 지나고 있어. 난 영영 또 겨울만을 기다리겠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에 널 처음 만난 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



두 달을 맨정신으로 버티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소주를 딱 두 잔 마셨다. 그래도 잠이 안 와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활자로 써내려가보고자 한다. 옛 사람들의 연애 스토리처럼 구구절절 종이에 펜으로 마음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써 가는 것도 좋겠으나, 이미 디지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터라 텅텅, 꽉 차고도 빈 소리를 내는 키보드 타건음으로도 한자 한자 마음이 눌러 써지길 바래 본다.




고작 술 두 잔에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져서, 좀 더 마시고 기절하듯 잠에 들어볼까 잠시 고민했다. 근데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숙취로 내 일에 지장을 줄 수는 없기에. 내 이별이 내 일에 지장가게 할 수는 없지. 너를 잃고 얻은 내 지금마저 잃어버리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나.


네게 너무 미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내가 내려와놓고 단 한 번도 얼굴 보러 못 간 게 진짜 뼈에 사무치게 미안하다. 내가 먼저 좋아해 놓고, 내가 먼저 놓아 버렸다. 놓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돌아보니 결론적으로는 그랬다. 당시의 나에겐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 보였다. 당장 네 옆에 있는 나보다는, 너랑 더 나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당시의 나로선 네 곁에 있을만한 사람이 못 될 것 같았다. 더 단단하고 튼튼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고, 무언가 자격을 갖춰야 너와의 미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던 건데, 그 결정이 내 오판이었음을 나는 어떻게 인정해야 하지? 물론 그 선택으로 인해 나아진 것들이 정말 많다. 덕분에 미루고, 또 미루며 차마 하지 못했던 결정들을 내릴 수도 있었고, 점차 내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기도 하다. 많이 삐걱거리고 넘어지지만, 좋아지고 있다. 근데, 이제 네가 없다.........


네가 다른 사람이랑 연애를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입이 열 개, 백 개라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네 곁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한 건 진짜 안타깝게도 나다. 이게 이렇게 내 목을 조르고, 숨을 막히게 할 줄은 몰랐다. 사실 다 내 욕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기다려 주기를 바랬다. 욕심 부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다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네게 마음이 갔을 때부터.


진짜, 내가 다 잘못했는데, 분명히 내가 놓은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나부터 열까지 너를 놓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심지어 잠에 들어 꿈을 꾸는 순간까지 다, 전부 다 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뜨고 싶지가 않고, 잠을 자면 또 꿈에 네가 나올까봐 그게 무서워 잠을 자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꿈에서 너를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꿈에서라도 너를 볼 수 있기에 잠만 자고 싶다. 이 미친 짓이 한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두 달이 지나도 제자리라니. 아니, 이제는 망상장애까지 더해진 것 같다. 하도 그리워해도 끝이 보이지가 않아서 이젠 언젠가 너랑 다시 마주칠 순간을 상상 속에서 그리고 있다. 상황이 구체적이 되고, 다양해진다. 이게 미친년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정신병이 대순가, 이게 정신병이지.


내가 너에게 해준 게 너무 없다. 그게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다. 넌 내가 얼마나 널 좋아했는지 모르지? 어쩌면 넌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을 거다. 네가 그랬지. 잔인한 건 가 아니라 였다고. 맞는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 널 혼자 둔 건 결국 나였다. 그래서 널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 자신을 원망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잊는 거? 잊어야지, 잊어야지 다짐하는 것도 결국 상기시키는 거더라. 그럼 도대체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넌 평생 모르겠지? 네가 처음 입사하던 날 내 자리로 걸어오는 너 말곤 아무것도 안 보였던 시공간이 있었다는 걸. 네가 내 옆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얼마나 긴장했었는지를. 아무것도 티 내지 않으려고, 말 더듬지 않으려고 얼마나 나 자신을 다잡았었는지를. 너랑 처음으로 다 같이 밥 먹는 날 얼마나 기뻤는지를. 네가 밥 먹곤 나 말고 다른 여자 차장님이랑 걸어가는 뒷모습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져 이게 뭔지를 얼마나 오래 한참 고민했었는지를. 매주 목요일마다 너랑 같은 팀이 되지 않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를. 내가 퇴사하는 주 목요일, 너랑 같이 밥 먹으려고 과장님한테 한참 징징거려서 조를 바꾼 걸 말이야. 너한테 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수없이 노력했는지를. 너 때문에 아침마다 매만지던 머리가 매번 망해서 출근길 지하철이 달리는 내내 얼마나 아쉬워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한테 가는 마음을 끊어내려고 성급히 퇴사를 결정했었다는 것을.


이것도 다 모르겠지. 우리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가, 뭐였더라... 카페인 각성효과였던가? 회사에서 각성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헤매던 걸 네가 찾았다며 퇴근길에 카톡을 보냈었지. 그 카톡에 내가 지하철 개찰구에서 얼마나 바보같이 오래도록 멈춰 서 있었는지 넌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지? 나 12월에 부산 놀러 갔을 때 네가 무슨... 오타쿠 이야기였던가, 진짜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으로 나한테 보낸 카톡에 내가 얼마나 오래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다가 겨우 답장했었는지, 모르지? 네가 어떤 마음으로 그랬던 건지 난 이제 영영 알 턱이 없지만, 혹여 그냥 가볍게 찔러보는 마음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난 아니었어. 누군가를 이런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버겁고 무서울 정도로 네가 좋았어. 단 한 번도 내 인생에 결혼이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널 만나고선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겠다, 아니, 결혼하고 싶다 생각했었던 것도 넌 모를 거야.


지하철에서 같이 만나서 가기로 한 날, 달리는 지하철 내내 네가 오기 전까지 내가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고 있었던 것도 모르지? 너만 만나면 립밤을 잃어버리던 나를, 넌 칠칠맞다 기억하겠지. 근데 그거 알아? 나 살면서 단 한 번도 립밤 잃어버린 적 없었다? 난 진짜 뭘 잃어버리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너만 만나면 다 고장 난 것처럼 어디 나사 하나가 빠져가지고 자꾸만 립밤이 사라지는 거야. 그것도 모르지? 작고 귀엽던 다른 회사 동료가 너한테 담배 피우러 가자고 했을 때, 내가 옆 자리에서 신경 안 쓰는 척하려고 얼마나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려 댔었는지, 그것도 모르지?


네가 고등어초밥 사 온다고 한 날 있잖아. 나 사실 일하다가 네가 카톡 보낸 거 바로 봤었어. 근데 너무 좋아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는 거야.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몇 시간 내내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퇴근하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적당히 좋은 척 답을 했었어. 이것도 모르지? 나는 왜 그리도 미숙하고 어리숙했던 걸까.


널 두고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내가 몇 번이나 울었는지 그것도 모르겠지. 물론 나도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지만, 너도 진짜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얘기해 줄걸. 재지 말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다 얘기해 줄걸 그랬어. 언젠가 얘기할 순간이 있을 거라고, 다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넘기지 말 걸 그랬어.


진짜 그냥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심각할 정도로 많이 좋아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가장 없었던 시기였어서 마음이 전혀 괜찮아지지가 않아. 차라리 좋아한 만큼 다 해보고, 해줄 수 있는 만큼 다 해주고, 그러기라도 했으면 차라리 네가 미웠을 텐데. 난 지금, 내내, 계속 나 자신이 너무 미워. 이게 혹시 내가 저버려온 책임들에 대한 벌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망치가 되는 게 내 벌일까. 너무너무 무력하다.


네가 마지막에 나한테 그랬지. 내가 너보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야, 그건 말이 안 되지. 네가 훨씬 덜 힘들어야지.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네 하루하루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네 목을 조이는 그 무엇도 없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던 일도 다 잘 되고, 네 모든 게 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 진짜 너도 대단하다. 차인 사람이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들다니. 주변 사람들은 다 나한테 그래. 잊어버리라고, 너 자신 말고 걔를 원망하고 탓하라고. 걔가 나빴다고. 근데 난 반대로 되더라. 놀랍게도 나한텐 너에 대한 나쁜 기억이 하나도 없었어서 그게 잘 안 돼. 딱 하나 원망하는 거 찾자면, 좀 나쁘게 차주지 그랬어? 네가 그랬지. 차라리 욕을 하라고 말이야. 근데, 네가 욕 나오게 안 했는데 어떻게 그래? 차라리 나 이제 너 하나도 안 좋아한다고 하지 그랬어. 그럼 내가 이 힘듦에 반은 너한테 책임전가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100% 다 나야.


여름의 네가 참 궁금했었는데, 알 수 없는 채로 여름이 다 지나고 있어. 난 가을의 너도 알 턱이 없겠지. 난 영영 또 겨울만을 기다리겠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에 널 처음 만난 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리워할 수 있는 계절의 네가 겨울의 너라서 참 다행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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