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날이 우리의 헤어짐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혹시, 그날 기억나? 우리 헤어지기 며칠 전에 있잖아, 내가 뒤풀이 마치곤 잔뜩 취해서 기차역까지 버스 타고 갔었던 날. 너한텐 그저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버려서 기차역에 내린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어. 널 보러 가려고 그랬어. 그렇게 잔뜩 취해선 꾹꾹 누르던 마음 하나만 붙잡고 기차역까지 갔었는데, 근데, 통장에 표를 끊을 만큼의 돈이 없더라. 아니, 딱 표 끊을 만큼의 돈만 있더라. 근데 그걸 써 버리면 내 생활비가 없더라. 당장 널 마주하고 커피 한 잔 할 돈도 없더라. 그래서 취한 걸 핑계로 울면서 간 기차역에서 다시 뒤돌아섰어. 취기를 핑계 삼아 네가 너무 보고픈 마음을 겨우 꺼내 들고 가 놓곤, 다시 꾸역꾸역 욱여넣었어.
아, 분명 다채로운 오늘이 잿빛이다. 세상이 잿빛임을 여실히 느끼는 내가 너무 밉다. 내게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고자 매일을 노력한 엄마를 두고 세상을 잿빛이라 여기는 내가 너무 싫다. 네가 처음부터 없던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내 세상, 찬란하지 않아도 좋으니 적당히 컬러풀하기만 해도 되는데. 찬란하다 없어져 버리니 자꾸만 눈앞이 흐려져 잿빛이 되잖아. 너만 컬러로 보이는 흑백 세상에 너 없이 혼자 남은 것 같다. 나조차도 흑백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