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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06. 2024

보내지 못할 생일 편지를 쓰며

내가 너를 잊지 못할까 두려워

사랑해. 아직 사랑해서 미안해.
날 너무 혐오하지 않기를.



오늘은 너한테 편지를 한 통 써보려 해. 특별한 날도 아닌데, 왜 쓰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8월이 끝나가고 있어서 그러려나. 9월이 오고 있어서 그러려나. 너 없이 맞이하는 가을이 조금은 무서워서 그러려나. 그런, 생각보다 별볼 일 없는 이유들이야. 이 편지가 네게 닿을 일은 아마 평생 없겠지만, 혹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정말, 정말, 정말정말 희박하고 또 희박하겠지만, 아직 네게서 빠져나오지 못 한 내가, 네게 할 말이 참 많다고 마음속에서 소리치고 있어서 그래.


어제는 잠들기 전에 자리에 누워 네 생일날 네게 보낼 메일을 써 봤어. 아직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도 나는 그 날만을 기다려. 조금이나마 네게 연락할 핑계가 생기는 날이라서. 그 메일에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오로지 사무적으로 전달한 내용만 담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 중이야. 그 노력을 네 생일이 오는 날까지, 한 달 동안 할 생각이야. 온갖 연락 수단을 차단해 버린 네 덕에 메일로 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비참해서, 구차해서, 최대한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정말 전하고픈 말만 담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매일 그 짤막한 글을 다듬을 거야.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내 마음이 정리되면 좋겠어. 제발, 뻔히 무시당할 걸 알면서도, 어쩌면 네게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네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 하는 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내 마음이 제발 정리되면 좋겠어. 내가 참 바보구나, 어리석구나, 를 여실히 느껴가는 요즘이야. 너는 어떨까, 나를 칼 같이 정리해 버린 넌, 너 자신을 똑똑하다 생각하고 있을까? 바르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여기고 있을까? 맞아. 넌 똑똑했어. 난 솔직히, 날 버린 네가 똑똑하다 생각해. 네가 똑똑했기에 나한테 안녕을 고할 수 있었던 거야.


내 마지막 사랑이 너이길 바랬었지만, 물 건너간 지 오래되었지. 내 다음 사랑은 너보단 좀 덜 똑똑했으면 좋겠어. 아니다, 그 때에는 똑똑한 사람이 봐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거 알아? 사람이 발전하는 건 사랑하고, 사랑받고,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아파하고, 불안하고, 외로울 때라고 하더라. 나도 많이 발전해 보려고 해. 처음 겪는 이별을 기회삼아 많은 걸 배워 보려고 하고 있어. 내 주제, 내 처지, 나를 둘러싼 내게 주어진 환경, 그 속에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 향해야 할 방향, 기타 등등을 말이야.


너 그거 모르지. 내 서랍엔 다음에 널 만나면 전해 주려고 쓰던 편지가 아직 들어 있다는 걸. 9월엔 제발 내가 다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에 대한 마음도, 나를 갉아먹는 그리움도, 날 잠 못 들게 만드는 이 형체 모를 올가미도, 다, 전부 다. 한 꺼풀 벗어나갈 수 있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어.


아, 솔직히 말하면,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네가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너무너무 그리워. 차라리 우리가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마주칠 기회라도 있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네 얼굴을 볼 수 있었을까? 지나가는 길인 척 네 집 앞을 지나가 볼 수도 있었겠지? 이렇게 찌질히 널 그리워할 기회마저 내가 다 저버린 것 같아 또 무력해지는 밤이야.


네겐 아프지 않은 8월이었겠지. 잘은 모르지만, 내 추측이 맞다면 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 중이 아닐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이랑 잘,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면서, 또 화해하며 돈독해지면서, 그랬으면 좋겠다. 하려던 일도 전부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9월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해. 아직 사랑해서 미안해. 날 너무 혐오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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