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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05. 2024

내가 태양을 품고 있어도 너는 몰랐겠구나

너한텐 내가 차가운 사람이었나 보다

아,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미안해지는 이 날이 내가 잘못 살아온 길에 대한 벌인가 보다. 날이 가면 갈수록 네가 멀어진 이유가 온전히 나라는 걸 깨닫는 이 순간이 내 업보인가 보다. 아직 널 좋아하는 내가 혐오스럽다.



널브러지듯 누워 무념무상, 아무 의미도 없이 인스타그램의 릴스 창을 위로 넘기다 문득, 한 연애 유튜버의 말을 듣게 되었다. 태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멀리 있는 우리에겐 적당한 따스함만 느껴지는 것처럼 마음도 그러하다고, 내가 아무리 팔팔 끓어도 상대에겐 전해지지 않는다는, 대충 요약하자면 재지 말고, 마음을 숨기지 말고 몽땅 표현하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네가 생각났다. 네게 미안해졌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무려 왕복 10시간이나 되는 거리,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멀고 먼 거리를 벌려 놓곤 내 상황에 치여 네게 뜨겁기는커녕 따스하지도 못 했다. 사귄 지 한 달 만에 돌연 장거리 연애를 만들어 놓곤, 저를 보러 한 번을 올라오지 않는 날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온갖 여유를 몽땅 잃어버린 나는 내심 네가 다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사귄 지 한 달 만에 갑자기 장거리 연애를 하자는 나를 그 당시에 차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는 나를 정말 많이 이해한 것이었다. 내가 널 보러 가지 않은 건 너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는데. 네가 주말에 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주말에 일을 하게 된 건 정말로, 너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는데. 우리 엄마가 이리도 먼 거리를 날 보겠다고 오는 널 만나주지 않은 건, 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는데. 전부 다 아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너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매주 주말이 뭐야, 매일 보고 싶었다. 매일 저녁도 아니다, 그냥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었다. 너랑 매 끼니를 같이 먹고 싶었고, 같이 잠에 들고 싶었고, 잔뜩 흐트러진 갓 일어난 모습도 너무너무 많이 보고 싶었다. 너는 내가 아침에 너보다 먼저 일어나 자고 있는 네 얼굴을 보며 울었다는 걸 모르겠지. 영영 모르겠지. 잘 보지 못 함이 너무너무 아쉬워서, 여기까지 와 줬던 네게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밖에 보지 못하게 만든 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또 떨어지기가 너무 싫어서, 그래서 그랬었다.


난 널 많이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는데, 너랑 더 많이 마주 보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전혀 그러질 못 했다. 태양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워야 사람에겐 겨우 따스함이 전해진다는데, 나는 태양을 품고도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보지 않는데, 네게 느껴졌을 리가. 그럴 리가 없지. 네가 헤어지는 날 내게 했던 말을 자꾸만 다방면으로 이해하게 된다. 잔인했던 건 나였다는 그 말. 지금 날 차는 네가 아니라 내가 잔인했었다는 바로 그 말. 그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귓가를 맴돈다. 나는 그냥 널 두고 내려가 버린 그 행동을 일컫는 것인 줄만 알았었는데, 아니다. 그냥 그 이후로 다 내가 잔인했다. 내가 매정했고, 내가 차가웠다. 내가 뭘 품고 있었든 간에, 결국 표면으로 드러난 행동과 결론은 그러했다.


왜, 왜 하필 네가 내 곁을 지켰던 시기가 내가 제일 허술하고, 헤매고, 어렵고, 흔들리는 시기였을까? 왜 하필 그랬을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둘 걸 그랬어. 너를 흔들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느낀 나는 참으로 차가웠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리고 또 아린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너랑 가까워지지 말 걸. 그냥 적당히 매력적이었던 회사 동료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사이로 놔둘걸. 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네가 잊혀져야 하는데, 내 과오와 내 오판이 양파 껍질 까듯 자꾸만 발견되어서 괴롭다. 너는 이 모든 걸 다 알았기에 나에게 안녕을 고한 거겠지. 이걸 혼자 다 삼키고선 결단을 내린 거겠지.


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난 너를 더 붙잡을 수 없겠구나. 내가 널 그리워하는 것조차 네게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내가 널 그리워하는 것 또한 참 이기적인 짓이구나. 내가 감히, 나 따위가 감히, 어떻게 널 그리워한다 말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써 내려가는 이 글이 네겐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혹시 우리 인연의 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정말 실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반나절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내가 내 잘못을 뉘우칠 기회가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 네게 조금이라도 당당히 미안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제발 오면 좋겠다.


그렇지만 네가 내가 없는 인생이 편하다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 난 네게 미안하니까, 더 미안하고 싶지는 않다. 더 미안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아,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미안해지는 이 날이 내가 잘못 살아온 길에 대한 벌인가 보다. 날이 가면 갈수록 네가 멀어진 이유가 온전히 나라는 걸 깨닫는 이 순간이 내 업보인가 보다.


아직 널 좋아하는 내가 혐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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