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의 정현 Sep 07. 2024

네가 그리울 때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야겠다

태도가 마음이 되듯, 내 마음도 접어 날려지길 빌면서

네가 그리울 때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야겠다. 한 개, 한 개, 정성껏 접어 모아 두었다 어디 탁, 트인 곳에, 죽어가던 숨결도 뻥 뚫릴 만한 그런 곳에 가 전부 날려버려야겠다. 내 마음도 이렇게 고이 접히길 빌면서. 내 그리움도 이렇게 훨훨 날아가 버리길 빌면서. 제발 그러길 빌면서.



세상엔 참 다양한 각자의 오늘이 있다. 다들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도 모두의 하루가 전부 다르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세대와, 시간과, 경험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오늘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오늘 이별을 겪는다. 오늘 하루에 사랑과 이별이 공존할 수도 있다. 가족과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연인을 잃을 수도 있고, 연인은 건재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각자의 매일이 다 다르다. 그럼, 그 매일을 어떤 빛깔로 채워가느냐는 누구에게 달려 있을까?


참 다행히도, 아니, 어쩌면 조금 안타깝게도, 그 답은 모두의 자기 자신이다. 물론 사람이, 아주아주 슬픈 일이 닥친 하루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다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슬픈 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나아가는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답은 나에게 달려 있다. 특히나 그게 연인과의 이별이었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평생을 진한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니고, 단지 스쳐 지나가는 연인이었다면 말이다.


물론, 연인과의 이별이 마냥 가볍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지금의 나만 봐도 그렇다. 인연의 경중은 만난 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말처럼, 고작 네 달의 짧은 인연이 부재했단 이유만으로 삶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이 그 증인이다. 몇 년간 유지하던 생활 패턴이 송두리째 무너져 밤낮이 바뀌고, 맛있는 게 세상 제일 좋던 내가, 겨우내 바스러지는 나뭇잎처럼 메마른 입맛을 가지게 된 새로운 나와 매일 마주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쯤 되었으면, 네 달짜리 인연이 끊어진 지 세 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슬슬 내 태도로 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시기 아닐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도 이젠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각자 이별을 정리하는 기간이 다르다지만, 이쯤 되면 여전히 아파하는 나의 안녕의 방식이 조금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나를 꼭 세상의 시선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사고라는 게 있지 않은가.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를 잃은 것도 아닌데, 평생을 함께하고자 약속한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것도 아닌데, 이리도 마음 정리를 못한 채 질질, 이리 질질, 저리 질질, 내 마음 하나 주체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나 자신이 우습지 않을까. 나도 이젠 나 자신이 우스운데.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 그냥 너에겐 내가 지나가는 계절이었을 뿐인데, 이제 곧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데 나 혼자 겨울을 보내기 싫다며 두툼한 겨울옷을 꽁꽁 끌어안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태도는 마음이 된다. 마음이 안 따라 주면 태도라도 먼저 바꾸라고 배웠다. 겨울을 보내기 싫어도, 아무리 싫어도, 아무리 못 놓겠어도, 계절이 흐르는 순리에 따라 껴입은 옷을 한겹 한겹 벗어 낸다면 나도 언젠간 새로운 계절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네가 그리울 때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야겠다. 한 개, 한 개, 정성껏 접어 모아 두었다 어디 탁, 트인 곳에, 죽어가던 숨결도 뻥 뚫릴 만한 그런 곳에 가 전부 날려버려야겠다. 내 마음도 이렇게 고이 접히길 빌면서. 내 그리움도 이렇게 훨훨 날아가 버리길 빌면서. 제발 그러길 빌면서.

이전 08화 보내지 못할 생일 편지를 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