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아도 잊혀질 수 있도록
너만 버리려 했더니,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도 버려진다. 너만 버리려 했는데, 내가 사랑하던 취향들이 버려진다. 너만 버리려 한 건데, 내 삶이 조각조각 버려진다. 귀를 막아버릴까, 눈을 가려버릴까. 지나가는 말 한마디, 흘려가는 멜로디 하나에 네가 다 서려 있는데, 난 널 어떻게 보지 않아야 하지.
9월, 이제 가을이 와. 가을이 오면 널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닌가 보다. 낙엽을 바스락 즈려밟으며 산책로를 거니는 너는 더 멋있겠구나,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올리는 내가 참 가엽다. 날이 추워지면 좀 살만할 거야. 그립다 못해 의미도 정처도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 자꾸만 조여지는 느낌을 추위에 숨겨 좀 덜어낼 수 있겠지.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숨을 쉬면 폐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아릴 듯 차가운 공기에 숨 쉬는 게 여실히 느껴져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서.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끊임없이 그리는 이 미련하고 둔한 마음도 쌀쌀해지는 공기에 조금은 트였으면 좋겠다. 이번 겨울엔 너랑 꼭 첫눈을 보고 싶다고,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덧 이룰 수 없는 덧없는 꿈이 되어버렸네.
아무것도 저버리지 못해서 미안해. 가을엔 널 꼭 잊어 볼게. 네 SNS도, 네 사진도, 네가 담겨 있는 물건들도, 다, 모두 다 보지 않을 거야. 네가 떠오르는 노래들도 듣지 않을게. 네가 떠오르는 일상들도 살지 않을게. 어리석고 멍청한 내가 너를 또 떠올린다면, 내 손으로 내 양 뺨을 내리칠게.
근데, 내가 듣는 노래는 다 너였고, 내가 살아내는 일상 속에 다 네가 보이는데, 그럼 난 가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너만 버리려 했더니,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도 버려진다. 너만 버리려 했는데, 내가 사랑하던 취향들이 버려진다. 너만 버리려 한 건데, 내 삶이 조각조각 버려진다. 귀를 막아버릴까, 눈을 가려버릴까. 지나가는 말 한마디, 흘려가는 멜로디 하나에 네가 다 서려 있는데, 난 널 어떻게 보지 않아야 하지.
제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