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의 정현 Sep 11. 2024

너로 무너진 사람의 동력은 결국 또,

너로 무너지고 너로 일어서고자 하는 어리석음

그런데, 정말 실소도 아까울 정도로 우습게도, 너를 잃은 나의 동력은 또 다시 너의 부재이다. 너의 부재를 이겨보고자 하는 마음, 너에게 내 글이 닿아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해 주길 바라는 헛된 희망, 혹여 앞으로 살아가다 너와 잠시라도 스칠 우연이 내게 주어지길 바래보는 아둔함. 이들이 요즘의 내 동력이 되고 있다. 너로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동력은 또 다시 너다.



사람은 누구나 동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뮤즈'라고 하던가. 동력이 꼭 하나라는 법은 없다. 가족, 이념, 꿈, 욕구, 사랑, 성공, 돈, 친구... 동력은 끊임없이 많다. 무엇이 중심이 되느냐, 무엇이 그 사람의 동력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느냐, 에 대해선 논해볼 수 있겠지만, 이게 동력이 되니, 안 되니에 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요즘들어 자꾸만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뿐 아니라 다들 그런 시기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날 사고가 나듯. 그 사고가 꼭 물리적이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사람과의 이별도 사고가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당장 무너졌다 해서 모든 동력을 잃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이 여러 개이듯, 수십 개의 나무 토막이 모여 커다란 처마를 지탱하는 서까래를 만들어 내듯, 여러 개의 동력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은 휘청인다. 휘청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휘청이는 나를 견디다 못해 이렇게 글을 써내려간다는 게 조금은 우스울 정도로, 그 휘청임은 당연한 일일 테다.


지금의 사고는 너다. 아니, 너를 잊지 못하는 나다. 고작 네 달짜리 인연의 부재가 이리도 내 동력에 큰 부재를 만들어냈다 이실직고하는 게 조금은 부끄럽지만, 놀랍게도 그렇다. 네가 고한 이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자꾸만 내 중심을 들이박는다. 내가 이리도 중심이 약한 사람이었던가, 고작 네 부재가 이리도 큰 불을 끌 정도로 내 안엔 불이 없던 사람이었던가, 싶어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지는 매일이다.


네게 배운 점이 참 많다는 사실 자체가 네게 미안해지는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난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조차 네게 배우려 하고 있다. 너를 잊어야 끝나는 일인데, 나 홀로 너를 붙잡고 가르쳐달라 조르고 있다. 세상에, 이리도 미련할 수가.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존재할 수가. 네가 이런 내 모습을 보지 못 한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은 날들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좋다고 했던 너에게 내 깊이가 이리도 얕음을 들키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며,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너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어젠 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어떤 정체 모를 계정이 태그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동기부여 글들이 잔뜩 모여 있는, 마케팅 계정이었다. 이틀을 고민했다. 이게 네 계정일까? 네가 운영하는 계정이라 프로필에 걸어 둔 걸까? 이게 만약 네 것이라면, 내가 참 부끄러울 것 같았다. 이리도 꾸준한 줄 모르고 내가 블로그를 더 잘 아는 듯이 말했던 나 자신이, 내가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잠시나마 여겼던 내 자신이 모두, 참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는 내게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었던 걸까, 나는 너의 고작 어디까지였던 걸까, 네게 나는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내가 모르는 너는 어찌도 이리 무궁무진히도 많은지. 너와 참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며 잔잔히 기뻐하던 매일들이 전부, 하루하루 전부 모여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전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아, 넌 너를 그리워하는 내 자신이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고작 여기까지밖에 들이지 않은 사람이 고작 그 마음을 붙잡고 차마 놓아버리지 못 하는 게 너무나도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실소도 아까울 정도로 우습게도, 너를 잃은 나의 동력은 또 다시 너의 부재이다. 너의 부재를 이겨보고자 하는 마음, 너에게 내 글이 닿아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해 주길 바라는 헛된 희망, 혹여 앞으로 살아가다 너와 잠시라도 스칠 우연이 내게 주어지길 바래보는 아둔함. 이들이 요즘의 내 동력이 되고 있다. 너로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동력은 또 다시 너다. 


이리도 멍청한 나를 모르는 네가 참, 다행이다. 

나의 얕음을 더 알기 전에 네가 날 떠나 줘서, 정말, 다행이다.

이전 11화 이별이 날 괴롭히는 진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