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무너지고 너로 일어서고자 하는 어리석음
그런데, 정말 실소도 아까울 정도로 우습게도, 너를 잃은 나의 동력은 또 다시 너의 부재이다. 너의 부재를 이겨보고자 하는 마음, 너에게 내 글이 닿아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해 주길 바라는 헛된 희망, 혹여 앞으로 살아가다 너와 잠시라도 스칠 우연이 내게 주어지길 바래보는 아둔함. 이들이 요즘의 내 동력이 되고 있다. 너로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동력은 또 다시 너다.
사람은 누구나 동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뮤즈'라고 하던가. 동력이 꼭 하나라는 법은 없다. 가족, 이념, 꿈, 욕구, 사랑, 성공, 돈, 친구... 동력은 끊임없이 많다. 무엇이 중심이 되느냐, 무엇이 그 사람의 동력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느냐, 에 대해선 논해볼 수 있겠지만, 이게 동력이 되니, 안 되니에 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요즘들어 자꾸만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뿐 아니라 다들 그런 시기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날 사고가 나듯. 그 사고가 꼭 물리적이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사람과의 이별도 사고가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당장 무너졌다 해서 모든 동력을 잃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이 여러 개이듯, 수십 개의 나무 토막이 모여 커다란 처마를 지탱하는 서까래를 만들어 내듯, 여러 개의 동력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은 휘청인다. 휘청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휘청이는 나를 견디다 못해 이렇게 글을 써내려간다는 게 조금은 우스울 정도로, 그 휘청임은 당연한 일일 테다.
지금의 사고는 너다. 아니, 너를 잊지 못하는 나다. 고작 네 달짜리 인연의 부재가 이리도 내 동력에 큰 부재를 만들어냈다 이실직고하는 게 조금은 부끄럽지만, 놀랍게도 그렇다. 네가 고한 이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자꾸만 내 중심을 들이박는다. 내가 이리도 중심이 약한 사람이었던가, 고작 네 부재가 이리도 큰 불을 끌 정도로 내 안엔 불이 없던 사람이었던가, 싶어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지는 매일이다.
네게 배운 점이 참 많다는 사실 자체가 네게 미안해지는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난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조차 네게 배우려 하고 있다. 너를 잊어야 끝나는 일인데, 나 홀로 너를 붙잡고 가르쳐달라 조르고 있다. 세상에, 이리도 미련할 수가.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존재할 수가. 네가 이런 내 모습을 보지 못 한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은 날들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좋다고 했던 너에게 내 깊이가 이리도 얕음을 들키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며,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너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어젠 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어떤 정체 모를 계정이 태그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동기부여 글들이 잔뜩 모여 있는, 마케팅 계정이었다. 이틀을 고민했다. 이게 네 계정일까? 네가 운영하는 계정이라 프로필에 걸어 둔 걸까? 이게 만약 네 것이라면, 내가 참 부끄러울 것 같았다. 이리도 꾸준한 줄 모르고 내가 블로그를 더 잘 아는 듯이 말했던 나 자신이, 내가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잠시나마 여겼던 내 자신이 모두, 참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는 내게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었던 걸까, 나는 너의 고작 어디까지였던 걸까, 네게 나는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내가 모르는 너는 어찌도 이리 무궁무진히도 많은지. 너와 참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며 잔잔히 기뻐하던 매일들이 전부, 하루하루 전부 모여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전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아, 넌 너를 그리워하는 내 자신이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고작 여기까지밖에 들이지 않은 사람이 고작 그 마음을 붙잡고 차마 놓아버리지 못 하는 게 너무나도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실소도 아까울 정도로 우습게도, 너를 잃은 나의 동력은 또 다시 너의 부재이다. 너의 부재를 이겨보고자 하는 마음, 너에게 내 글이 닿아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해 주길 바라는 헛된 희망, 혹여 앞으로 살아가다 너와 잠시라도 스칠 우연이 내게 주어지길 바래보는 아둔함. 이들이 요즘의 내 동력이 되고 있다. 너로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동력은 또 다시 너다.
이리도 멍청한 나를 모르는 네가 참, 다행이다.
나의 얕음을 더 알기 전에 네가 날 떠나 줘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