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준단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아서
날 사랑했던 날들이 진실이었길, 진심이었길, 날 기억해 주길.
망각이란 신의 선물이 나뿐 아니라 너에게도 비켜가기를.
"당신은, 나를 기억하십니까."
시집을 읊는 잔잔한 노래에 나올 듯한 가사이다. 나를 기억하냐 물끄러미 물어보는 그런 말.
사랑하지만 헤어진다. 너를 위해서 헤어지는 거다. 서로에게 좋은 선택일 거다.
이런 말들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분명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헤어질 정도로는 사랑하지 않으니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네가 나한테 한 말처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사랑하진 않는다는 말처럼.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단 말도 이해한다. 그럴만했다. 나조차도 네게 그만큼의 사랑을 쏟아붓지 않았고, 내가 그 정도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인간상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연애, 그저 그런 좋아함, 행복하지만, 그저 그런 나날들. 함께하는 기쁨보다 보지 못해 앓는 그리움이 더 많았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피어오르는 마음조차도 지치게 했겠지.
분명 그저 그런 마음이었나, 내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저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별 후의 일상도 그럭저럭, 그저 그렇게, 좀 힘들다 말아야 하는 것 아닐지. 그렇지만, 내가 널 많이 사랑했다, 정말 많이 좋아했다 뒤늦은 고백을 하기엔 내가 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없었다. 네게 해준 게 너무 없었다. 해주다 못해 빼앗기만 했다. 네가 연인과 누리고 싶어 했던 소소한 행복조차도.
마음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던 짧은 연애였기에 이토록 오래 숨이 막히나 보다. 나 자신도 내 마음을 잘 모른 채 앓기만 했던 연애여서 그런가 보다. 비우고자 다짐한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너로 차오르고, 이것 하나 비우지 못하는 나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네 마음엔 내가 남아 있을까. 물어보고 싶다. 나를 기억하냐고, 내가 그리운 순간이 있었냐고, 내가 네 삶에 있어 때때로 떠오르는 사람이 되었냐고.
그렇단 대답만 들어도 좀 살만할 것 같다. 너는 날 매정히 지울 수 있는 멋진 사람일 것만 같아, 무섭다.
요즘은 부처의 책을 읽는다. 마음을 비우고자 시도하는 나의 발버둥이다.
갈애, 욕망에 애착하는 마음. 그런 것 따위 다 버려버리라 하는데, 그런 가르침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배우기만 하고 실천할 줄은 모르는 둔자가 바로 여기 있다.
어쩌면 그리움도 중독인 걸까. 지금의 내 삶이 지나칠 만큼 심심해서 너를 그리워하는 감정이라도 유희로 남겨두려는 걸까.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그런 못난 짓을 하는 중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널 잊지 못하고 있단 사실보다, 그리움이란 감정을 알량한 유희로 쓰는 중이란 사실이 더 버티기 쉬울 것 같다.
날 사랑했던 날들이 진실이었길, 진심이었길, 날 기억해 주길.
망각이란 신의 선물이 나뿐 아니라 너에게도 비켜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