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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14. 2024

스스로를 괴롭히는 진짜 이유

사실은,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폭식을 했다. 속이 쓰릴 걸 알면서도 일부러 맵기를 올렸다. 반도 못 먹었을 때 이미 배가 찼는데도, 꾸역꾸역 끝까지 먹었다. 제발 괴롭고 싶었다. 소화가 안 되고 싶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너를 그리워하느라 지금, 영영, 매일이 괴로운 게 아니라고, 과식을 해서, 매운 음식에 위벽이 상해서, 소화가 안 되어서 괴롭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를 괴롭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더라. "괴롭힌다"란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쉽게 풀어 말하면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 말이다. 단편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발목이 약한 사람이 무리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의미 없는 달리기를 하는 것, 소화력이 약한 사람이 체할 걸 알면서도 앞에 있는 음식을 꾸역꾸역 욱여넣는 것, 내일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잠들지 못하는 것, 잠들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당장의 위안을 위해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프면서도 매일 운동을 하는 것, 쌓인 피로를 풀지도 못하면서 매일 무리하게 일을 하는 것, 속이 쓰릴 걸 알면서도 매운 음식을 먹는 것,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빈 속에 안주 없이 술을 들이켜는 것,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것, 사랑했던 노래들을 듣지 않는 것, 최종적으로, 나에게 쉼을 주지 않는 것까지.


누군가는 표면적인 부분만 본 채 이것을 "갓생"이라 칭할 수도 있다. 매일 도합 11시간, 12시간씩 일을 하고, 1시간씩 운동을 하고,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이어진다면 갓생이 될 수도 있겠지.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냥,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쉬는 시간을 버티기가 힘들 뿐이다. 조금의 틈만 주어지면 자꾸만 내가 나를 책망하게 되어서 그렇다. "진짜" 나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렇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폭식을 했다. 속이 쓰릴 걸 알면서도 일부러 맵기를 올렸다. 반도 못 먹었을 때 이미 배가 찼는데도, 꾸역꾸역 끝까지 먹었다. 제발 괴롭고 싶었다. 소화가 안 되고 싶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너를 그리워하느라 지금, 영영, 매일이 괴로운 게 아니라고, 과식을 해서, 매운 음식에 위벽이 상해서, 소화가 안 되어서 괴롭다고 말하고 싶었다.


발목이 아프면 안 뛰면 된다. 파스를 붙이면 된다. 소화가 안 되면,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잠이 안 오면 커피를 줄이면 되고, 다리가 아프면 운동을 좀 쉬면 된다. 속이 쓰리면 위에 부담 없는 음식을 먹으면 되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되고, 안주를 곁들이면 된다. 울음이 필요하면 울면 되고, 노래가 그리우면 노래를 들으면 되고, 숨이 턱 끝까지 차면, 좀 쉬면 된다. 


내가 날 괴롭히고 있는 것들은, 간단하고 명료한 해결책이 있다. 내가 뜻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다.


내가 지금 괴로운 이유가 네가 없어서라고, 날 떠난 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등신이라서라고, 그러하다고 받아들여버리면, 이건 어떻게 해도 해소할 도리가, 방도가 없어서 그런다.


사실은 괴롭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 다른 괴로움은 내가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으니까, 뭘 하든, 내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괴로움이니까. 괜찮아질 수 있는 괴로움이니까.


내 괴로움이 너로 인한 괴로움이 아닌 척하려고 그런다. 그래서 그런다.


나에게도 언젠간 도리와 방도가 주어지길 소망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바쁘게 사는 것뿐이다. 내가 지치는 것 따위는 상관이 없다. 지쳐도 괜찮다. 버텨내고 싶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수 있기를. 이 마음이 언제까지나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아직 닳아 없어지기엔 좀, 많은 거겠지. 언젠가 시간이 더 가면 닳고 닳은 종잇장이 되어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


당장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너무 질책하지 말 것.


더 괴로울 것. 괴롭다는 사실 자체에 괴롭지 않을 것.


이리도 괴로운 부재를 선물해 줄 만한 사람을 만났었음에 감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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