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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16. 2024

온전히 괴롭고 싶은 날

사실은 널 잃은 내가 너무 싫은 날.



그런 날이 있다. 온전히 괴롭고만 싶은 날. 더 이상 이 괴로움을 잊으려 무리한 운동을 하지도, 하루 8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다 와선 또 책상에 앉아 일을 하지도, 애써 괜찮은 척 재미있는 걸 뒤적이며 웃으려 하지도 않고픈 그런 날.

그렇다고 널 회상하며 미소 짓고 싶지도 않은 그런 날. 이 그리움이 대체 언제 끝날까, 언제면 이 바보 같은 짓이 끝이 날까, 하는, 답 없는 질문을 계속 나에게 던지고만 있고 싶은 그런 날.

이러면 안 된다고, 내가 이러는 걸 알면 상대방은 좋아하겠냐고, 오히려 내가 혐오스럽지 않겠냐고, 딸자식이 이리도 바보 같은 걸 알면 엄마가 얼마나 속이 타겠냐는 날 선 질책도 그만하고, 온전히 나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괴롭고만 싶은 날.

사실은 쉬고 싶은 날.
사실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날.
사실은 널 잃은 내가 너무 싫은 날.
사실은 네 생각 없이 푹 잠들고 싶은 날.
정말 사실은, 다음날 아침 네가 다시 내 삶에 존재하길 간절히 바라는 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넘치다 못해 부서지는 진심으로 바라는,
가엾은 내 하루의 끝.

네가 행복하길 바라지만, 때론 있잖아. 너도 나를 겨우 삼키려 애쓰는 그런 날이 한 번쯤은 있기를 빌어.

나만 가여운 하루를 마치긴 조금, 억울해서.

사실은 우리 둘 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지만 말이야,

나만 그래야 한다면. 정말 가끔은 너도, 너도,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아, 이리도 가엽고 가난한 마음이 될 줄 알았다면, 사랑하지 않을 걸 그랬다.

사랑의 자격은 이별을 받아들일 줄 아는 거라던데, 난 자격 없는 사랑을 했다. 자격 없는 욕심을 부렸다.

그 대가가 참으로 잔혹하구나.
분수에 안 맞는 것을 욕심낸 대가가, 참으로.

걸맞지 않게 욕심낸 것에 대한 책임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네 이별이 내게 남긴 자국이 씻어낼 수 없을 만큼 짙기를. 그 자취로 내가 성장하기를. 제발.

내가 널 그만 그리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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