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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17. 2024

그리움의 장작

빨리 겨울이 와서 내가 너를 더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열정적인 사람도 언젠간 번아웃을 겪게 되듯, 그리움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많이 그리워해 버리면 언젠간 소진되는 날이, 다 닳아 없어지는 날이 있지 않을까?



오늘은 우연히 예전에 일할 때 쓰던 네이버 카페를 들어가 봤어. 안 쓴 지 오래된 카페라 탈퇴하려고 들어갔던 거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다 보니 네가 재직중일 때 써둔 시시콜콜한 일상글들이 보이더라. 세상에. 넌 정리가 빠른 사람답게 이미 그 카페를 탈퇴했는데, 게시글이랑 댓글들은 남아있더라고.


우리가 만난 기간이 길지 않았어서 그런가, 내가 너를 그리워할 수 있는 소재가 애초에 많지 않았었거든. 사진 말고, 네 모양새 말고, 너란 사람의 행동, 말, 생각을 그리워하고팠는데, 그런 게 참 찾기가 힘든 거야. 근데, 네가 쓴 글들이 카페에 참 많더라.


물론 일 때문에 의무적으로 남기는 글들이었어서 별 내용도, 핵심도 없는 글들이었지만, 아무런 정성 없이 1분도 안 걸리는 시간 안에 휘리릭 써 갈기는 글이었겠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널 볼 수 있어서 참 기뻤어. 한참을 웃으면서 봤어. 시시콜콜 의미도 없는 활자들이, 네가 써둔 것이란 사실만으로도 참 재밌더라.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자고 네가 쓴 글 전부를 다 보았을까. 마치 마약처럼,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볼 땐 참 즐거웠는데 창을 닫고 나니 심장이 콱, 조여 온다. 내가 널 좋아했었단 사실이 이젠 뿌연 안개로 점철되어 흐릿한 장면으로 남아있는데, 잠시 널 처음 봤을 때로 돌아갔다 온 기분이었어. 갑자기 선명하게. 그러다 다시, 지금 이 현실로. 형체도 없는 매캐한 그리움 속으로.


아, 어떻게든 이 그리움의 불길이 덜 일게 하려고, 어떻게든 잦아들게 하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는데, 내가 아주 제대로 장작을 가져와 타오르는 불길에다 들이부어 버렸네. 근데 있잖아, 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장작을 많이 부으면 오히려 불이 꺼지지 않을까? 타고 있는 불보다 훨씬 큰 장작을, 훨씬 많이 들이부어 버리면 불이 좀 사그라들지 않을까? 그런, 어이없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잠깐 머리를 치고 지나간 발상이 참 우스워서 실소가 나왔어.


사람이 글을 쓰는 건 어떤 면에서는 자기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래. 마음을 가다듬고, 다스리는 과정. 나도 그런 것 같아. 형체 모를 그리움에 잠식당하는 게 무서워서, 어떻게든, 활자로라도 그리움의 형태를 만들려고 한 것 같아. 네가 날 그리워해주었으면 좋겠단 이기심에 써 내려가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쩌면 너에겐 독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조용히 사라지면 될 텐데, 혹여 눈에 띄기라도 하면 네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을 테니까.


빨리 겨울이 와서 내가 너를 더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열정적인 사람도 언젠간 번아웃을 겪게 되, 그리움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많이 그리워해 버리면 언젠간 소진되는 날이, 다 닳아 없어지는 날이 있지 않을까?


어서 눈이 내리면 좋겠다. 얼른 칼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널 처음 본 날이 다시 돌아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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