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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정현 Sep 18. 2024

꼭 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가 보다

멍청한 이별의 방식

언젠가, 이 멍청함이 부질없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겠지.
그때, 내가 자연스레 널 놓을 수 있기를.



난 여전히 "연인의 이별"이란 개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이 세상 누구보다 가깝게 여기던 사람이 그리도 매몰찬 한 순간에 내 삶 속에서 죽은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도,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잘 돌아보니 애초에 "연인"이란 개념 자체가 좀 이상한 거더라. 어떻게 서로 완전히 다른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삶을 살아온 두 개인이 만나 그리도 단시간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개념 자체가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애초에 이해되지 않는 관계였기에, 이해되지 않는 이별을 맞이하는 거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람이란 참 이기적인 존재라, 사랑의 시작은 자신에게 달콤하게 다가왔기에 이해되지 않음 따위 전혀 상관하지 않았었지만, 사랑의 마지막은 자신을 해치려 들기에 그제서야, "도대체 왜?", "어떻게?" 따위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거였구나.


이별을 "잘" 하는 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점점 괜찮아지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너와 함께 들었던 노래의 재생 버튼을 누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멍하니 인스타그램의 릴스 창을 넘겨 올리다 그 노래가 나와 한참을 미소지었다. 그래서 한참을 리플레이하며 다시 들었다. 참, 행복하더라. 너랑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는 일이, 그렇게까지 아프지만은 않더라. 다시는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 참 쓰리고 씁슬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그런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하더라.


나는 아직도 내 일상 속에서 네 이름을 부른다. 아무 생각 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밥을 먹다가도 한 번 불러 보고, 일을 하다가도 한 번 불러 보고, 아침에 눈을 떠서도 한 번 불러 보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또 한 번 불러 본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예쁜 밤하늘을 보면서도, 선뜻 다가오는 살랑이는 가을 바람이 간지러울 때에도, 웃음이 나는 순간에도, 또 한 번 불러 본다. 무 당연하게 잠에 들며 너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그리고, 그 순간에서 깨고 싶지 않아 아침잠을 더 청한다. 요샌 일부러 일어나는 시간보다 이르게 알람을 맞춰 두었다. 널 추억하며 더 자는 5분이 참 행복해서.


이런 내 모습을 만에 하나라도 네가 알게 된다면, 어쩌면 넌 내가 참 우스워 보일 지도 모르겠다. 너는 이미 날 정리하고도 한참이 지났을 지도 모르는데, 그저 잠시 만났던, 잠시 너의 빈 자리를 채워 주었던 사람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데, 난 뭘 위해 이리도 어리석은 끝마무리를 장식 중인 건지.


다짐컨데, 더 이상 널 잊으려 애쓰지 않겠다. 네가 아직도 내 삶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내가 그렇게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겠다. 뼈에 새기겠다.


언젠가, 이 멍청함이 부질없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겠지.

그때, 내가 자연스레 널 놓을 수 있기를.

이게 내 미숙한 첫, 이별의 방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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