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의 정현 Sep 10. 2024

이별이 날 괴롭히는 진짜 이유

내 못남이 전부 네가 날 떠난 이유같아서

이번엔 외면하지 않겠다. 널 놓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결정들을, 그 대가를, 매일매일 느끼며 괴로워해야겠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칠 게 아니라, 베일 만큼 베이고, 찔릴 만큼 찔려야겠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표면 위로 드러났을 땐, 무수히 많은 무의식과 뿌리, 가지들이 그 땅밑에 파묻혀 있다고 한다. "이별이 힘들다."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다. 이별이 힘들지 않으면 이별한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룬 게 아니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별은 왜 그렇게 힘들까? 단순히 외로워서? 나와 함께하던 사람의 부재가 매일, 매 순간, 시시각각 느껴져서?


사랑한다면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만일, 나와 동행하는 것보다 나와 이별하는 것이 상대에게 더 좋은 선택이었음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기꺼이 그를 보내줘야겠지. 기쁘게 놓아주어야겠지. 내가 그를 보내줄 수 있음에, 그가 나를 떠난다는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임에 감사해야겠지, 그러면 될 일인데, 왜 이리도, 너의 부재는 왜, 매일매일 나를 갉아먹을까?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별은, 내 못남을 부각시키는구나. 그래서 이별이 힘든 거구나. 내가 모르고 싶었던,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조금은 능글맞게 넘어가고 싶었던, 그런 부분들을 너무나도 여실히 바라보게 만드는구나. 네가 넓혀주고 떠난 시야로 난 더 많은 걸 볼 줄 알게 되었는데, 그 시선의 끝에 나의 모자람이 자꾸만 걸려서 그렇구나. 


네게 참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너와 함께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길 바랬다. 근데, 나는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네가 떠난 자리엔 내가 틀리게 걸어온 길들에 대한 책임이, 내가 잘못 사고한 것들에 대한 대가가, 내가 함께하고픈 사람을 만났을 때, 감히 그럴 만한 값어치를 갖춘 사람이 못 되었다는 지독한 현실만이 잔뜩,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내가 혼자가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잠시 꾼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엔 외면하지 않겠다. 널 놓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결정들을, 그 대가를, 매일매일 느끼며 괴로워해야겠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칠 게 아니라, 베일 만큼 베이고, 찔릴 만큼 찔려야겠다. 그리고, 아프다고, 나 찔렸다고, 나 베였다고 울며 상처를 부여잡고 있는 게 아니라, 치료하고, 어디에서 찔렸는지 파악하고, 왜 내가 베였는지를 알고, 고쳐야겠다.


나의 모자람을 깨달으며 받는 상처에 또 네 이름을 부르는 내가 참 웃기다. 아주 코미디가 따로 없다. 네 이름을 놓지 못 해서 정말 미안해. 남의 이름, 함부로 자꾸 불러대서 정말 미안해.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될게. 네가 날 놓친 걸 후회할 만큼, 정말 내면부터 괜찮은 사람이 될게. 귀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될게.


내가 이런 것들을 배우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이전 10화 이번 달엔 널 보지 않으려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