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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Feb 26. 2023

어떤 동화

모두 나를 떠날 때 썼던 이야기

늘 가던 숲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푸른 나무와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나도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순간 여러 개의 손이 땅밑에서 솟아나 나의 발목을 잡았다. 잡고 나서는 나의 발가락을 하나씩 잘라가고 발목마저 도려내었다. 내가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의 고통을 즐기며 하나씩, 잘라나갔다. 나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숲에 머물 수 없기에 기어가다시피 하여 집에 도착했다.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집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차오르는 눈물에 고요하게 울었다. 울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백했다. 그때 집이 나에게 말했다. 늘 있는 그대로를, 나보다 나를 더 나를 알아주던 집이 매몰차게 말했다. “나는 네가 싫어, 더 이상 스스로 걸을 수 없잖아” 더 이상 집은 나를 받아줄 수 없기에 나는 반쯤 사라져 있는 다리로 집밖으로 나와 맨 땅 위에 서 있었다. 땅은 나를 오랫동안 지지해 주던 존재였다. 언제나 영원히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땅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네가 나를 밟고 서 있는 게 싫어, 너 혼자 헤쳐나가” 땅도 그렇게 한순간 나를 떠나버렸다.


나는 그대로 추락하고 허공에서 깊은 지하로 떨어져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아이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울었다. 누가 내 목소리 좀 들어달라는 듯이 일부러 크게 소리쳐 울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엎질러진 물처럼 나는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붙어 굳어 갈 것 같았다.


걸을 수도, 눈물을 그칠 수도 없는 내게 어떤 어깨들이 기대라고 말해주었다. 도와달라는 말도 할 수 없을 때  어떤 어깨는 따스하고 시원한 계절이 되어주고, 처음 보는 꽃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의 발목은 꽃처럼 천천히 피어났다. 나의 상처들은 여러 갈래의 흉터가 되어 얼룩덜룩한 무늬가 새겨졌다. 그 무늬를 가리고 싶었다. 누군가 이 무늬를 보면 또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한참 그 무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무늬를 나만의 무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것을 제일 가까이서 봐줄 수 있는 사람,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름답게 바라봐주면 빛날 것이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늘 밟고 있던 땅이 아닌 낯선 곳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시 피어날 준비를 했다. 내 안에 새로운 것들이 자라나 채워져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걷는 속도는 다시 조금씩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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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나의 꿈이었고 사랑하는 연인이, 가족이 나를 내치듯 떠나버릴 때 나는 그 순간에도 글을 썼다. 어두운 동화를 그렸다. 너는 이제 완벽하게 혼자야. 모든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연인은 나의 집이었고 내가 밟고 서 있던 땅은 가족, 엄마였다. 주먹이 연속으로 날아와 속수무책으로 맞고는 그대로 쓰러져 썼던 글이다. 언제나 시련은 한 번에 와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나는 인도에 가게 된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 나라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그곳에서 더 큰 웃음과 위로의 눈물을 흘리고 왔다. 몇십 년을 살았던 한국이었는데 한 달밖에 있지 않았던 인도가 내가 있어야 할 곳 같았다. 모든 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으니까. 그 한 달 동안 몇십 년을 살았던 것보다 행복해서 웃고 행복해서 울었으니까. 이제 그만 말해야 하나 싶은 그 나라 이야기를 나는 언제나 마음속에 담아 둘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많이 웃었으니까. 그 웃음이 그때 정말 순수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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