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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Jan 17. 2023

요구하지 않는 사랑

뮤지컬 베토벤을 보고

모두가 친절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해주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유독 나에게만 날카롭고 길들일 수 없는 존재에게 이렇게 말하며 사랑에 빠진다.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클래식 클리셰로 이렇게들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토벤은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거친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그녀의 마음으로 그를 감싸준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에는 이런 마음들이 있다.


혹시나 누가 그런 기억을 남겼냐고 묻는다면 나는 큰 고모를 얘기할 것이다. 고모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아토피가 심해 붉은 자국이 있는 나의 손을 어루만져주셨다. 나도 보기 싫은 흉한, 예쁘지 않은 손이라고 여겼는데 얼마나 아프니.. 하면서 그 손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 기억 하나로 나는 큰 고모가 생각난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언어도 있지만, 행동에서 더 많이 드러나고 느껴진다. 잠들었을 때 엄마가 손과 발에 조심스럽지만 꼼꼼히 피부약을 발라주던 순간, 잠결에도 느껴지는 사랑이 포근해 그 손길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나를 어루만져주고 사랑을 주고 있었다.


버스에서 잠이 들었을 때 고개가 불편할까 봐 어깨를 내어주고 가까이 기댈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 따뜻한 눈빛으로 눈을 맞춰 나를 바라보던 사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다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온 마음을 다해 나에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봐주지 않았던 손가락의 작은 상처를 봐주는 것. 유일하게 알아주는 것.


모두가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구하지 않는 것을 넘어 따스한 마음이 와닿는다면 거칠었던 표면을 쓰다듬어 주듯이 잠잠해지고 깊은 곳 안에서 무언가 피어날 준비를 한다.


나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 그런 사소하지만 전부인 것을 맞춰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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