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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요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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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Jan 28. 2023

같이 비틀거려 주는 그의 노래

정준일 공연을 보고

그의 공연은 여전히 담백하다. 낮다 못해 어두운 조명, 관객석은 잘 보이지 않게 조명을 맞춘다. 아직도 관람객들의 표정과 눈을 마주치기 어렵다는 그의 말이 솔직하게 다가온다.


물병의 뚜껑을 따는 소리, 숨소리까지 다 들리는 작은 공연장에서 정준일은 자신의 노래를 들려준다. 노래를 통해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그대들은 어떤가요? 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고요‘라는 노래는 듣고 있지만 나의 눈앞에 이별하는 연인들의 모습과 감정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첫사랑을 통해 정준일을 알게 되었고, 첫사랑과 이별 후 발매된 노래인 고요를 듣고 거의 오열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마치 나의 이별의 순간을 엿보고 가사를 쓴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어떤 이별 노래는 딱 나를 보고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고요는 정말 나의 이별의 순간이었다. 아래에 가사 한 부분을 옮겨본다.


자 그대 일어나면 이별이 시작돼요

이렇게 가만있으면 아직 애인이죠

세상이 멈춘 듯 이렇게 굳은 채로만

공원의 조각들처럼 언제나 지금 이대로

자 이제 고개 들어 이별을 시작해요

손끝에서 떨어지는 순간 외면할게

눈물은 안돼 그 소리 들을 수 없어

그 모습 볼 자신 없어

이 고요 속에 이별해


정준일의 노래는 나의 슬픔과 우울, 처절하고 지질하고 미련한 어두운 모든 모습을 대신 말해준다. 조금 더 깊게 말이다. 그래서 그가 좋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라고 말하기엔 부족해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라고 말한다.


섬세한 그의 목소리가 가사 위에서 나란히 걷는다. 피아노와 베이스가 전부인 무대 위에서 더는 부족할 것이 없다. 더 뺄 것 없는 그의 노래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이 시간이 느리게 가기를 바라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의 목소리만 담아보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는 그의 얼굴은 조금 더 밝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는 노래보다 연주를 더 좋아하고 연주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듣는 음악도 그런 종류이고. 그의 미소를 보니 나의 대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저런 미소를 지은 적이 있었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나의 모습을 보더니 ‘너는 그림 그리는 게 정말 행복해 보여’. 하고 말해주었다. 그도 알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비틀거리며 어떤 길을 걷고 있던 내게 그는 직접적인 위로나 뻔한 말보다는 나도 이렇게 비틀거려요.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미안해요.라고 말한다. 그를 사랑하는 한 가지 이유이자 모든 이유이다.


그의 노래가 축 처져있던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포근히 온몸을 감싸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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