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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Feb 14. 2023

어린 딸은 나밖에 모르고

영화 애프터썬을 보고

오늘 애프터썬이라는 영화를 봤다. 11살의 어린아이와 아빠가 튀르키예로 여행을 가서 캠코더에 찍은 영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영화 속에는 아이와, 아이만큼이나 젊은 아빠가 나오는데 마치 나와 아빠의 모습 같았다. 그 영화를 보니 나는 영화에 나온 여자아이의 나이였을 때가 생각이 났다.

( 이 후로 영화의 감상을 위해 줄거리나 리뷰는 적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나는 엄마와 살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 아빠를 만나게 될 수 있었다. 아빠와의 추억은 주말에 쌓았다. 주말에 만나면 아빠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새로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의 아빠는 나에게 좋은 것을 입혀주고 싶어서 당시에 비쌌던 브랜드의 옷을 몇 개씩 사주시곤 했다.


아빠를 만나는 주말이면 아빠는 나를 동네에 있는 서점에 데려가시곤 했다. 어린 나는 늘 만화책이나 일러스트가 그려진 잡지를 골라 들었다. 그게 재밌기도 하고 예쁜 그림체를 보는 게 너무나 좋았다. 아빠는 내가 어떤 책을 고르던 뭐라 하지 않으셨고 책을 사주시는데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빠도 책을 골라 같이 서점을 나오곤 했다. 지금의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나, 책을 고르는 취향이 아빠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시골에 가면 꽂혀있는 아빠의 책이 지금 내가 읽는 책의 결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성인이 되어갈수록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주말에 만나 나와 시간을 보낸 것을 아빠가 나를 키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와 있는 시간이 더 많기도 했지만 나를 그렇게 반반 키우는 부모님이 밉기도 해서 다 큰 성인이 된 후에야 반항심을 마주했다.


아빠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서러운 마음에 아빠에게 원망하듯 화를 토해낼 때도 오히려 아빠가 더 미안해하셨다. 그때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다 잘못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제일 중요했고 내가 제일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그 시절의 아빠도 많이 젊었고 많은 것을 혼자 겪어내며 힘드셨을 텐데 어린 딸에게는 좋은 것만 주려고 하셨다. 어린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고, 그게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빠와 내가 있던 그 시간 속에는 아빠의 사랑이 가득했다.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나였는데 미워했고 원망했다.


다 커서 나이를 먹어가는 딸보다 더 빨리 늙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을 때 오히려 더 미웠다. 왜 그렇게 빨리 변하고 나보다 더 작아지는 것 같은지 사랑하면서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했다.


아빠 눈에 나는 아직도 어린 딸인가 보다. 아빠는 늘 아침마다 안부 문자를 보내시며 딸이 잘 지내기를 바라신다. 아빠의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니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빠의 힘든 시간을 몰라주었지만 그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신 아빠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어리고 이기적인 딸은 이제야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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