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Nov 04. 2018

가을을 만나러 달랏으로

호치민 온 지 100일 만에 여행을 떠나다

내가 있는 호치민은 연중 여름인 곳이다. 비가 오는 우기와 그렇지 않은 건기가 나눠져 있을 뿐,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고 하루 종일 기온차가 그렇게 크게 나지도 않는다. 나는 건기의 끝 무렵 처음 호치민에 왔었고, 한창 우기일 때 호치민에 이사를 와서 이제는 다시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에 접어들고 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는 다들 단풍 사진, 도톰한 옷차림이 넘실거리는데 나는 여전히 반팔과 반바지 옷뿐이라 급 가을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기에서 만난 친구 부부와 함께 생애 첫 부부동반 해외 (아니 국내인가?) 여행을 달랏으로 떠났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시원한 공기와 높은 하늘

호치민에서 달랏까지는 비행기로 약 50분.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느낌인데 공항이 시내와 엄청 가까워서 그런가, 오히려 제주도 가는 것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저가 항공이라 그냥 공항에 착륙하면 버스도 없이 걸어서 대합실로 향하면 된다.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 참 제주도 같다는 느낌이었다. 


화창한 오후,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시내로

호치민과 달리 달랏 공항은 시내와 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 봐야 차로 3~40분 거리지만) 당연히 그랩이 될 줄 알았지만 여기에서는 GrabCar 서비스를 쓸 수 없었다. 그렇다면 택시 기사들과 흥정을 해보자며 택시 스탠드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30만 동 (한화 약 1만 5천 원)에 시내로 향했다. 호치민과 다르게 탁 트인 도로와 시원한 공기가 너무나 반가웠다. 신호등도 없이 쭉 뻗은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또 제주도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도착한 달랏 시내의 호수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달랏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수였다. 호치민에 있는 사이공 강은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적이 없어서 기분이 남달랐다. 이 호수의 이름은 Xuân Hương 인데, 나의 짧은 베트남어 어휘 실력에 따르면 봄 향기 그러니까 '춘향호'인 것이다. 자연 호수인 줄 알고 엄청 감탄했는데 글을 쓰는 이 시점에야 찾아보니 인공 호수라고 한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선선한 바람까지, 정말 평화로운 곳이다. 



우리가 너무나 좋아했던 리조트

달랏 여행 중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단연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였다. 전형적인 리조트의 모양새지만 사람이 너무 많지도 않았고, 산책로를 따라 예쁜 빌라들이 있어서 다음에 가족들과 온다면 꼭 빌라에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묵는 이틀간 아침마다 호수를 따라 산책했는데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꽃과 호수, 중간중간 귀여운 조형물들까지. 날씨도 내내 화창했던 터라 아주 잠시 스위스나 북유럽에 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다딴라폭포의 미니 롤러코스터

우리가 처음 찾은 관광지는 다딴라폭포였다. 여기에는 2인승 미니 롤러코스터가 있는데 내려갈 때 본인이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남편하고 같이 탄 덕분에 속도 조절은 남편에게 맡기도 나는 열심히 영상을 찍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밖으로 튕겨져 나갈까 봐 좀 걱정하기는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돈 15만 동 (한화 약 7,500원)에 꽤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였다. 폭포는 생각보다 소박해서 딱히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오로지 이 곳에는 롤러코스터를 타러 오는 걸로! 


달랏의 인스타 명소, 달랏대성당

그다음에는 달랏 성당으로 향했다. 사진을 보니 꽤 귀여운 모양새라서 기대했는데 내 생각보다도 더 작은 성당이었다. 종종 보이는 유럽 건축양식을 통해 이 곳이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성당에서는 우리 모두 오래간만에 웨딩사진 새로 찍는 것처럼 부부 컨셉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웨딩사진 찍은 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니, 세월이 빠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오래간만에 셀카 말고 오글거리는 포즈 하려니 조금 어색했지만...!) 


이탈리아 소도시의 가정집에 온 것 같은 기분

성당 근처에서 점심 먹으러 간 곳은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내부가 정말 가정집을 개조한 것처럼 꾸며져 있어서 기분이 편안해졌다. 에어컨 필요 없는 날씨에 따뜻한 햇살, 일광욕 즐기는 고양이까지. 달랏에서 또 다른 이국을 느끼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달랏 여행의 하이라이트, 랑비앙 산 오르기

달랏 여행의 핵심은 랑비앙 산을 지프로 오르는 것이다. 몰랐는데 랑비앙 산 높이가 2천 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한라산보다 높은 산을 오르다니...! 우리가 갔을 때는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멀리까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니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게 끼는 경우도 많아서 운이 안 좋으면 올라가서 아무것도 못 본 채 내려오는 경우도 있는 듯했다. 산속 작은 전원마을처럼 꾸며둔 게 아기자기하고 예뻐 보인 곳이었다. 


세기말 느낌의 달랏꽃정원

달랏은 또 꽃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꽃 정원이 있다길래 가봤는데 뭔가 국적불명의 조경이 한 곳에 모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본식 분재도 있고, 프랑스식 정원도 있고, 화분이 주르륵 놓여있는 곳도 있고.... 게다가 만들어진 지 좀 오래됐는지 살짝 낡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사진 찍으면 화사하게 잘 나왔다. 역시 꽃의 힘이란....! 

 


사실 달랏은 크지 않아서 '관광지'를 보는 건 하루면 다 끝낼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좀 멀리 커피 농장이나 딸기 농장에 가 보기도 하고, 느릿느릿 호수를 돌아보기도 하는 걸로 달랏 여행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다음날 좋은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 하고, 처음 봤던 '춘향호'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간단한 쇼핑을 한 다음 마사지를 받는 걸로 달랏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이나믹하고 분주한 도시 호치민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갖고 조금이나마 가을 기분이라도 낼 수 있어서 달랏 여행이 참 즐거웠다. 다음에 가족들이 온다면 꼭 다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바찌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