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150km, 수박 따러 갔다가 수박처럼 익어서 돌아옴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주말에 수박 따러 갈래?'라고 해서 흔쾌히 '그래!'라고 해서 따라나섰다. 남편 회사 동료가 초대해서 가는 건데 참석자는 호스트 친구와 그 친구의 남자 친구, 우리 부부, 남편 팀의 팀장님 부부와 딸(!), 또 다른 팀의 동료까지 해서 총 8명이다. 우리는 여행자, 그리고 외국인이 베트남에서 흔히 하지 못하는 경험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재밌어 보여서 오케이를 한 거였는데 한국의 주말 농장을 생각하고 갔다가 진정한 수박 농장을 보고 돌아왔다.
150km, 차로 쉬지 않고 달리면 4시간
우리가 찾아간 곳은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Ba Tri(바찌)라는 곳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메콩강 투어를 가면 미토나 벤쩨 중간 정도까지 간다는데 나는 거기서 더 들어가서 바닷가가 보이는 마을까지 가는 것. 아, 바찌라는 이 동네가 벤쩨 성에 속한 곳이기는 하다.
도착지까지 거리가 있으니 우리는 아침 7시 30분에 남편 회사 건물 1층에서 만났다. (출근 때보다 더 일찍 옴) 호스트의 남자 친구가 7인승 차를 빌려왔고 운전도 해 준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호치민에 와서 비행기 외에 육로로 시내를 빠져나가 보는 게 처음이라 창문 밖으로 바뀌는 풍경이 새로웠다.
호치민 시를 빠져나가기 직전, 꽤 근사한 휴게소라고 해야 하나 식당이 하나 있었다. 잘 가꿔진 정원에 깔끔한 인테리어까지. 물론 에어컨은 없지만 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고 쌀국수 같은 간단한 식사나 커피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 잠시 멈춰서 쌀국수 한 그릇씩 호로록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창 밖 풍경을 찍은 게 없어서 아쉬운데 호치민에서 벤쩨로 가는 도로는 넓지는 않아도 깨끗한 길이었다. 호치민 시를 지나니 차도 많지 않고 그냥 직선거리를 쭉 달리기만 하면 됐다. 신기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쭉 평지라는 것.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항상 시외의 풍경을 떠올릴 때 뾰족 뾰족 산 사이에 도로나 집이 있는 게 익숙한데 이 곳에서는 도로 양 옆으로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내 친구의 집 도착!
정오쯤 되니 호스트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호치민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아파트가 아닌 주택들, 자동차는 거의 보이지 않고 오토바이만 두어 대씩 지나다니는 길. 차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집이 특이했던 건 현관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니 있어도 열어놓은 것인가... 여하튼 뭔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에 들어서니 식사 공간으로 쓰는 공간이 나오고 그 뒤로 방들이 길게 쭉 붙어 있는 구조였다. 더운 나라에서는 날씨가 더우니 집이 앞뒤로 길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이 곳에 와보니 실제로 그랬다. 더 신기한 건 방 안에 오토바이가 (....) 있었다는 것.
어느 나라나 엄마의 마음은 다 같다. 딸의 회사 동료들이 온다고 하니 어머니가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하신 듯한데 양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태어나서 본 적 없는 사이즈의 반쎄오에 생선찜, 조개찜, 온갖 과일까지. 우리가 조개 그릇을 간신히 다 비워갈 때쯤 정확히 같은 양의 조개를 다시 부어서 리필해 주시기도 했다. 저희 이제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계속 음식을 채워주셨다.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서 반쎄오 일부를 손으로 뚝뚝 잘라 넣고 신선한 야채를 같이 넣어서 싼 다음 피시소스에 찍어먹으니 세상 꿀맛. 후식으로 나온 새빨간 수박도 내가 이제까지 베트남에서 맛 본 수박 중 가장 맛있었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이 고장에서 난 수박들이 호치민 시내 마트에도 납품되는데 배송 인프라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마트 매대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이제까지 베트남에서 먹은 수박들이 대체로 밍밍하길래 여기 품종이 이런가 했더니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달달한 향이 빠지는 것 같았다. 역시 과일은 따자마자 먹어야지.
수박 따기 체험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우리는 이번 여행의 목적(?!)인 수박을 따러 가기로 했다. 집에서 차 타고 10분쯤 갔더니 끝없이 수박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 이 땡볕에 수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해봐야지 하고 우리는 호기롭게 차에서 내렸다. 당연히 결과는 10분 만에 넉다운.
차에서 내리자마자 수박밭 안으로 들어가는데 햇빛은 내리꽂는 것 같이 강렬하고 강한 햇빛을 막으려고 긴팔 옷을 입었더니만 온 몸에서 땀이 젖은 수건 짜내는 것처럼 줄줄 나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칼을 하나 받아 들고 수박을 따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수박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우리나라 수박은 동그랗게 생겨서 축구공 같은 모양인데 여기는 빅사이즈 참외 같았다.
수박을 따는 것도 일이지만 무게가 있어서 들고 가는 건 더 엄청난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고작 두어 개씩 재미 삼아 수박을 따고 바로 그늘로 피신했다. 이 엄청난 수박의 향연이라니... 여기서 큰 수박은 저울에 달아봤더니 5kg 정도 됐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수박 하나씩 먹으라며 그 자리에서 수박을 까주셨다. 뜨거운 햇빛을 받아 달달한 수박, 물론 냉장고에 있던 게 아니라서 약간 수박찜(?!)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역시 맛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하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역시.... 수박을 주신다길래 우리는 한 사람당 1-2개 정도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닐에 두 개씩 담아서 가려는데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더 가져가라고 하시는 것. 어디선가 마대 자루(...!)를 꺼내시고는 그 안에 수박을 20개는 담아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손으로 까먹을 수 있는 미니 수박도 한 포대 챙겨주셨다. 차에 실을 곳이 없어요,라고 했더니 직접 나서서 트렁크에 실어주시기까지! 어머니 걸크러쉬...!
수박밭에서는 대략 1시간 정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사이 나는 뜨거운 태양에 완전히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덥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더위.
더위에 지친 우리는 그다음 바닷가로 향했다. 지도를 보니 베트남 남쪽 거의 끝자락에 있는 바닷가였던 것! 와, 정말 멀리 왔다... 붕따우보다 더 멀리 내려오다니.
엄마의 마음이란...
바닷가에서 더위를 잠시 식힌 다음 다시 호스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이때 시간이 다섯 시쯤 됐을 때인데 어머니가 또 식사를 준비해주셨다. 이번에도 스케일이...! 와서 노동력이라도 보탤까 했더니만 밭일은 해 본적이 없어서 10분만에 나가떨어지고, 계속 음식을 얻어먹는 게 괜시리 죄송스러웠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가 맛있게 잘 먹는걸 보고 뿌듯해하시는 듯 했다. (역시 어머니의 마음인가!)
거하게 저녁식사까지 대접받았겠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혼자 운전해야 하는 호스트의 남자 친구가 안쓰러웠지만... 우리 모두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차가 수동이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 미안하지만 돌아가는 길도 잘 부탁해, 하고서 우리는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도 우리가 들렀던 그 휴게소에 내려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가 만났던 회사 로비로 향했다.
7시 반에 출발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오니 저녁 10시. 내 얼굴을 보니 수박처럼 익어있었고, 온몸은 땀에 절어서 찝찝했다. 게다가 왕복 차를 10시간 가까이 탔더니 근육통이.... 그래도 친구 덕분에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즐거웠다. 처음 보는 수박밭 풍경에 100% 베트남 홈쿡, 꿀처럼 달달한 수박까지! 우리는 베트남 생활에 잊지 못할 추억을 이렇게 한 장 남겨 두었다.
그 후 우리는 저 수박이 너무 맛있어서 따로 살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톤 단위(!!)로만 판다고...
수박 1톤 호치민에서 공구해야 하는 건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