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다, 이제 받아들일 때가 됐다
이게 한 달 전쯤인가 했더니만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세 번째 이사를 앞두고 내 마인드 셋을 바꾸는 것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다시금 내 마음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후 별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현듯 해외 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꽤 긴장한 채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자극이나 문제가 발생해도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걱정이 훨씬 늘었고, 불안감도 심해졌다.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큰 병은 아닐까, 병원에 가도 저 병원은 과연 믿을만한 걸까, 그러다 이 나라에 사는 게 나한테 잘 안 맞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사실 한국에서 열이 좀 나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약 챙겨 먹거나 일단 출근한 다음 병원 가서 약 타는 게 전부였을텐데 여기서는 온갖 잡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간 씩씩하게 여기서의 난관을 잘 헤쳐왔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잠깐 힘든 일이 있었지만, 이 나라에 온 지 100일 만에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쌓았다고 생각했고 쉽게 적응했다고 자만했다. 이제는 인정한다, 그때의 마음가짐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까지 집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잘한다'는 말을 듣길 원했고, 실제로 그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도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됐지만 뒤로 갈수록 내 생각만큼 수월하게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집도 그렇고, 여기서 먹고사는 문제도 생각만큼 간단한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밥을 챙겨 먹는 것조차 꽤 버겁게 느껴졌다.
단편적으로 보면 나는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이 도시에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계발에 쓰고 있는 상황이라 남들이 보면 정말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사실 과거의 나도 이러한 삶을 동경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래서 나 자신이 힘들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 힘들다니? 그러다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들과 내가 모두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나도 지칠 수 있는 것이지. 돈을 버는 것과는 별개로 삶 자체가 힘든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 도시에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와이프는 괜찮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친구도 없이 생전 처음 와 보는 도시에서 출퇴근 없이 살아야 하니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의욕이 넘쳤고 꽤 바쁘게 지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지쳐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남편도 마음 한 구석이 좀 불안했나 보다. 지금 남편도 한국에서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해야 해서 정신이 없는데 이렇게 힘들 때 예전에는 '그만둘 거야!'라고 그냥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나 때문에 그 말 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여기에 있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고.
어제 또 우리는 공원을 산책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자기 최면은 이제 그만,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힘든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서로에게는 꼭 얘기하자고. 나는 심지어 남편에게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도 얘기했다. 퇴사를 결심하는 건 한국이나 여기나 같은 조건에서 결정할 문제지, '외국까지 와서...'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 그렇다고 진짜 그만두기로 한 건 아닙니다.)
결론은 잘해야만 한다거나 뭘 얻어가야 한다는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신나게 하고 싶은 것 하고 잘 놀면서 지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