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생활자가 느긋하게 다녀온 치앙마이

호치민보다 시원하고 조용했다

by 앨리스

올해 2월 첫째 주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명절인 뗏 연휴였다. 연휴 시작부터 호치민 시내는 사람이 빠져나가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고 한적해졌다. 베트남에 사는 사람들은 흔치 않은 장기 연휴 기회라 멀리 여행을 나가곤 한다. 하지만 음력 설을 지내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가야 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법. 우리는 그래서 망설임 없이 태국을 선택했으나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으니...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들이 연휴를 맞아 태국으로 몰려온 것이었다. 게다가 치앙마이로 들어오는 직항 항공편이 있는지 조그마한 치앙마이 공항은 중국인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남편은 이 길고 긴 연휴에 갑자기 열이 많이 나고 감기 기운이 심해져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최대한 해열제 + 항생제로 몸을 정비하고서 치앙마이에서는 정말 쉬다오자고 다짐했다.



올드타운의 아늑한 호텔, 타이 아카라 란나 부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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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인가

호치민에서 치앙마이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하지만 동남아의 저가항공이 늘 그렇듯 비행기는 연착되었고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게다가 입국심사 줄은 어찌나 긴지... 치앙마이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공항 밖에 택시 부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 준비 없이 밖으로 나갔는데 택시 갓등을 단 차가 보이지 않는 거였다. 공항인데... 왜죠... 그래서 우리는 그랩을 불러서 (호치민에서 쓰던 앱 그대로 켜서 부르면 되니 엄청 편하다. 그랩 만세!) 호텔로 향했다.


올드타운이라고 부르는 곳 안으로 들어서자 쌩쌩 달리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가 꽉 들어차 있지도 않았다. 아니 이런 골목에 호텔이 있나, 싶은 곳에 내렸더니 작지만 평화로운 호텔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작은 리조트에 온 기분에, 시끄럽지도 않고, 귀여운 수영장도 있었다. (사실 수영장은 너무 작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뭔가 목욕탕만한 사이즈라...)


흰 건물과 대비되는 쨍한 원색 색감, 짹짹대는 새소리,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노닥거리는 사람들 말소리. 아, 드디어 우리가 쉴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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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우리 방

우리 방은 3층에 수영장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발코니는 크지 않아도 두 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정도였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수영장을 바라보기 좋았다. 방 안에 과일바구니도 있었지만 우리는 귀찮아서 먹지 않았다. 호치민 가서 먹지 뭐... (동남아 생활자의 자신감?!)


치앙마이, 걷거나 스쿠터 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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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준 파란색 스쿠피, 그리고 조나단 기사

우리는 첫날 빼고 나머지 일정은 모두 스쿠터를 렌트해서 다녔다. 걷기에는 너무나 더운 날씨였고, 호치민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적어서 스쿠터를 타기에도 무리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건 태국은 우리나라, 베트남과 차선이 반대로 되어있어서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 운전이 익숙하지 않았고 길을 모르니 내비게이션을 봐야 하는데 오토바이에는 핸드폰 거치대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인간 내비게이션 노릇 (나의 육성으로 앞에서 좌회전, 500m 직진을 적당한 타이밍에 외쳐줌)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싶었는데 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야 남편은 스쿠터 운전에 익숙해졌다.


스쿠터 타는 게 좋았던 건 무엇보다 주차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덜 차지하니 좁은 치앙마이 골목 벽면에 스쿠터를 세워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한 블록이지만 걷기는 힘들어도 살살 스쿠터 타면 금방. 하지만 스쿠터 타도 타는 건 똑같아서 호치민에서 6개월 넘게 태우지 않았다고 자부했던 내 피부는 치앙마이에서 3일 만에 홀랑 타 버렸다. 그 덕에 온전한 동남아 도시 생활자가 되었다는 점.


해가 질 때쯤 되면 치앙마이는 호치민보다 더 시원했다. 그때는 치앙마이 곳곳을 걸어 다녔는데 호치민보다 훨씬 길이 깨끗하고 (=일단 포장이 끝나 있다) 오토바이가 꽉 차있지 않아서 걸을만했다. 게다가 도시 전체가 조용한 느낌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빵빵대는 차(또는 오토바이)가 별로 없었다. 길 위에서 차와 오토바이가 경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호치민에 있다가 치앙마이에 오니 세상 평화로웠다.


커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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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유명 카페 도장깨기

호치민에 와서 만족스러운 건 커피가 저렴하고 맛있다는 점이다. 커피 값이 부담스럽지 않으니 새 카페를 찾아 나서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됐다. 치앙마이에 오고 보니 이 도시도 유명한 카페가 많았는데 유명한 바리스타가 완성한 예술적인 라떼아트부터 독특한 색감의 커피까지. 가는 곳마다 좋은 카페가 있어서 더위를 식히기에는 딱 좋았다.


하지만 왜 대부분의 좋은 카페에는 의자 등받이가 없을까... 커피는 맛있었지만 의자가 불편했다. 요즘 인스타 감성 인테리어라고는 하지만 난 예전처럼 편안한 의자에 푹 기댈 수 있는 카페들이 더 좋다.


크고 작은 절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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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어디서나 절을 만날 수 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안에서는 아주 쉽게 절을 구경할 수 있다. 이름은 전부 기억할 수 없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다. 주말에 어떤 절은 플리마켓 같은 장터가 열리기도 했고, 또 어떤 절은 사람들이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꼭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치앙마이에서 만난 절들은 도시 곳곳에 놓인 쉼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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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도이수텝

올드타운 안의 절들이 저마다 매력을 지닌 작은 들꽃 같았다면 장미라고 부를 수 있는 절은 도이수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치앙마이대학교에서 문이 없는(!) 썽테우를 타고 한참 꼬불꼬불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 나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욱 화려한 황금빛 장식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도이수텝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절이라 치앙마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정사각형 모양의 올드타운과 치앙마이 공항의 활주로가 흐릿하게 보였다. 왜 생각보다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 거지 하고 이유를 찾아보니 태국 북부 지역에서는 건기가 끝나갈 때쯤 산불 때문에 공기 질이 좋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동차나 공장 때문이 아니고 사람들이 뭔가를 태우는 것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은 것. 다음에 치앙마이 여행을 간다면 이 기간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여행은 평소 속도의 절반으로 움직였던, 아주 느릿느릿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못 먹고/보고/즐기고 온 것들이 많아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 치앙마이의 속도에 맞게 편히 쉬다 온 듯하다. 하지만 다음에 또 치앙마이에 간다면 뗏 연휴는 피하고 평범한 주말에 잠시 다녀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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