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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30. 2020

한국에서 출발한 택배가 다음날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 교민들이 택배와 함께 뉴노멀 라이프를 보내는 법

나는 해외에 살지만 한국을 꽤 자주 오가는 편이었다. 작년에는 거의 분기에 한 번, 그러니까 한 해에 3-4번은 한국에 다녀왔다. 짧게는 2박 4일 (아이돌 스케줄?), 길게는 일주일 정도. 


코로나19 전 베트남을 오가던 항공편 수 (출처: 중앙일보)


실제로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코로나 이전에 한국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도 몇 편씩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빨리 한국 가야 할 일 생기면 티켓팅 하는 것보다 그냥 바로 공항 가서 '가장 빠른 거 주세요' 하면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여행객은 물론 출장 오가는 사람도 워낙 많아서 비행기가 그렇게 자주 있었는데도 대부분 꽉 채운 채로 운항했었다. 호치민 떤선녓 공항은 증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할 정도로 항상 북적였고, 활주로는 가득 차 있어서 스케줄 지연은 당연했다. 


하지만 2019년의 기억이 아득해질 정도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월에는 하루가 다르게 항공편이 점차 줄더니 3월부터는 입국 항공편 전면 중단. 이제는 베트남에서 나갈 수는 있어도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현재 베트남은 사전에 정부 허가를 받은 특별 입국 외에는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항공편도 없고...) 원래 2월에 한 번 갈 일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취소되고 이제 9월. 작년 10월에 한국에 다녀왔으니 이렇게 한국 못 다녀온 채로 1년이 지나게 생겼다. 


한국 다녀올 때 이 정도는 기본이지


해외 사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가끔 한국 갈 때마다 캐리어 한 가득 생필품 챙겨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나는 김치나 장류 같은 식료품은 안 챙기는 스타일이라서 다른 걸로 가방을 채우는 편. 뭐 이런 것까지 사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사소한 것이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여하튼 상반기 지나갈 즈음 쟁여둔 물건도 동나고, 한국 물건에 대한 갈망은 차오르는데 갈 수 없으니 답답해져 갈 즈음. 우리를 구원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항공택배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내가 처음으로 잠깐 해외생활했을 때는 엄마가 우체국 가서 EMS로 택배를 부쳐주곤 했다. 엄마가 송장번호 보내주면 한 달 내내 위치 추적하면서 어디쯤 왔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택배 도착하는 그 날의 짜릿함이란. 그 안에 뭐 대단한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각종 인스턴트 음식이랑 생필품을 받으면 적어도 한 달은 마음이 든든했다. 


업체 담당자분과 나의 대화. 깔끔하게 할 말만 하면 됨


하지만 요즘은 해외직구 배송대행지처럼 한국에서 받은 택배 모아서 보내주는 업체가 있다. 내가 자주 쓰는 곳은 베트남 교민들 사이에서 유명한데, 커뮤니케이션은 카카오톡으로 한다. 업체에서 지정해 준 곳으로 물건 받고 싶은 거 배송시키면 알아서 잘 모아서 보내주심. 택배 올 때마다 박스 찍어서 사진으로 보내주시고 언제쯤 모아서 발송해달라고 말씀만 드리면 끝. 그럼 무게에 따라 가격을 알려주시고 (대략 1kg당 1만 원 선) 내가 영업일 기준 오전 중에 입금하면 거의 바로 그다음 날 우리 집에 도착한다. (레알)


이건 정말 신세계다.


보내주신 택배 상자랑 내가 주문한 거 비교 대조하기 (한 번에 보통 이 정도 시킴)


EMS는 가족이나 친구가 택배 다 모아서 박스 뜯고 재포장해서 우체국에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이제는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 가족이나 친구가 택배 받아줘야 한다면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뭘 샀는지 너무 공개돼서 민망한데 이런 점까지 모두 해결! 단점은 딱 하나, 가격이 비싸다는 것 말고는 없다. 내가 써 본 결과 옷이나 신발처럼 무게 얼마 안 나가는 걸 많이 시키면 꽤 할 만하다. 


이번에 항공택배로 받은 먹거리 (이것만 받은 게 아니고 옷, 신발 등 아주 다양했음...)

어떻게 이게 가능하나 봤더니 국경은 닫혔어도 화물기는 매일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업체에서 알려준 마감 시간 전에만 입금되면 그 날 출발해서 다음 날 호치민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것. 놀랍게도 이런 항공업체를 통해 냉동식품을 받는 분도 많다고 들었다. (마켓컬리 업체로 배송받아서 다음 날 바로 베트남 보낸다든지, 심지어 택배 발송 가능한 맛집 음식들도 받는다고) 


역시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구나. 


항공택배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시간을 좀 더 쓰면 된다. 비행기 대신 배로 택배를 받는 건데 시간이 한 달가량 걸리는 대신 가격은 1kg당 3-4천 원 선. 기본요금이 10kg부터 시작이라 책이나 화장품처럼 무겁고 부피 큰 것들을 받을 때 유용하다. 나는 영국 갈 이삿짐을 베트남에서 싸서 보내야 하는데, 컨테이너에 실을 물건을 한국에서 해상으로 받을까 생각 중이다. 




순간 여기 한국인 줄... 우체국 택배!

누군가는 해외 살면서 뭐 그렇게 한국 물건을 받으려고 애쓰냐고 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여기 살면 사는 대로 적응해야지, 했는데 별 거 아닌 거에 불만이 쌓여서 어떨 때는 서러움이 폭발하기도 한다. 쓰자면 구차하지만 하다 못해 한국에서는 흔해 빠진 '적당한' 나무 주걱 하나도 베트남에서는 찾기 힘들다. 아무거나 사다 써도 똑같은 거 아닌가 싶다가도 제대로 잘리지 않는 쿠킹랩이나 호일, 마감 제대로 안 돼서 냄비 다 긁히는 국자, 몇 번 빨면 헤지는 속옷 쓰다 보면 그냥 한 번에 좋은 거 사고 싶어 진다. 정말.



한국에서는 약 7천원, 베트남에서는 9,500원 (메이드 인 베트남 나무 식기)

그래서 좀 좋은 제품을 사려고 보면 그런 물건은 한국보다 비싸다. 특히 베트남에 파는 한국 브랜드의 제품은 황당하게도 메이드 인 베트남인데 한국보다 더 비쌈. 물론 베트남에서는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니까 비싸지는 거지만 한국에서 훨씬 싼 가격에 같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 베트남에서 태어나 한국 갔다가 다시 베트남 오는 물건이라니... 메이드 인 베트남이니까 베트남 시중에 똑같은 물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노노. 그 퀄리티의 제품은 수출용입니다.


한국만큼 다양한 + 질 좋은 + 디자인이 괜찮은 공산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은 없을 거다. (참고로 나는 그냥 무늬없는 흰 플라스틱 바구니를 사려고 온 마트를 다 돌아다녔다.)


한국 가서 마트 털고 싶다

요즘은 그냥 맘 편히 한국 다녀올 비행기 값으로 항공택배 시킨다고 생각 중이다. 어차피 내가 한국 갔으면 비행기 값, 가서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엄청 들었을 텐데 아무리 사 모아도 그것보다는 싸다. 한국에서도 반가운 택배, 여기서는 정말 200배는 더 좋고 반갑다. 


그래도, 택배가 아무리 좋고 빨리 온다지만 한국 다녀오고 싶다.


한국 가서 평양냉면 먹고 친구랑 스타벅스 앉아서 수다 떨고 올리브영 가서 요즘 신상은 뭐 나왔나 보고 이마트 가서 신박한 식자재 잔뜩 사고 싶다. 올해는 글렀네... 



TMI

- 내가 쓰는 항공택배 업체 비슷하게 해외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이 있다. '우체국 합배송' 검색! 가족이나 친구 번거롭게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물건 제대로 받을 수 있음.

- 왜 EMS를 안 쓰냐고? 오래 걸리는 건 둘째치고 세금이라고 하면서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 돈이면 안전하게 업체를 쓰는 게 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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