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소파 사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베트남에서 영국으로 이사 오면서 대부분 다 챙겨 왔는데 가장 먼저 버려야겠다 생각한 건 소파였다. 한국 신혼집 들어갈 때 산 제품인데 고양이가 뜯기도 했고, 진짜 가죽이 아니어서 그런지 앞부분이 다 헤진 데다 가로길이가 3m나 되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소파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집 구할 때도 이 소파 들어갈 수 있는 거실을 찾느라 살짝 고생한 거 생각하면, 영국에선 소파에 맞춰 집 찾다간 말도 안 되는 고생길이 펼쳐질 것 같았다.
이삿짐을 다 풀고서는 내가 중간에 한국에 다녀오느라, 그리고 락다운 기간이라 가구점이 열 질 않아서 소파 구매는 하염없이 미뤄졌다. 3주 전, 자가격리 끝나자마자 우리는 가구점으로 달려갔다. 바로 소파 사야지!
하지만 영국에서 소파 사기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먼저, 우리의 소파 구매 조건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 거실 벽면을 캣타워, 책장이 채우고 있어서 중간에 놓을 수 있는 2인용 (가로길이 180cm 미만) 일 것
- 가죽소파 사봤더니 고양이가 다 뜯어서 난리남, 패브릭 재질일 것 (벨벳 안됨)
- 디자인은 심플, 모던한 것 선호
- 패브릭 컬러는 밝은 것이었으면
- 소파베드도 나쁘지 않음
- 조립은 직접 해도 됨
- 어차피 고양이가 뜯을 거라 가격은 800파운드 미만 선호
락다운 지침이 완화된 덕에 드디어 이케아 쇼룸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1%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지난번 소파가 편안한 기분이 좀 덜했던 탓에 푹신한 걸 앉고 싶었는데 약간 애매했다. 다행히 이케아 근처에 많은 가구점들이 있으니 잔뜩 앉아보고 사자! 하고 호기롭게 이케아를 빠져나왔다. 다시 이 곳에 오게 될 줄은 모르고...
그다음 인근 가구단지에서 온갖 소파 매장을 3주에 걸쳐 10군데는 더 가본 것 같다. 백화점 가구매장도 가보고, 아웃렛 형식인 곳도 가보고, 틈만 나면 소파를 보러 다녔는데 문제는 바로 받을 수 있는 소파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다는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게마다 재고를 들고 있는 게 아니고, 주문 넣으면 그때 제작해서 오는 거라 아무리 빨라도 10주 (두 달 반)는 걸리는 것. 인기 많은 디자인이나 수급이 안 되는 재질인 경우 20주까지 걸리는 것도 봤다. 대신 패브릭 옵션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소파 다리 모양이나 쿠션 종류도 고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빠른 배송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구글에 하도 'fast delivery sofa'를 검색했더니 인스타랑 페이스북 광고에 24시간 이내에 보내준다는 소파 광고가 줄줄이 등장. 이 경우 몇 가지 디자인과 색상, 재질이 정해져 있고 택배(!)로 받으면 내가 알아서 조립하는 구조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증강현실로 내 집에 직접 소파 배치해 볼 수도 있고, 무료로 패브릭 조각만 먼저 받을 수도 있는데 제일 큰 문제는 쇼룸이 없어서 내가 앉아볼 수가 없다. (대신 100일 내 환불 가능, 환불 비용이 무료는 아닐 것임)
아니면 가구 매장에 clearance sale이라고 붙은 소파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흠이 있어서 반품됐거나, 전시상품이었거나 등등. 꼭 새 거 아니어도 된다고 하면 이런 선택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선택이 폭이 너무나도 좁다는 점. 엄청나게 많은 매장을 돌아다녔어도 우리 마음에 드는 소파를 찾기는 힘들었다.
나중엔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중고 소파까지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 하지만 중고 소파는 운송 어레인지를 해야 해서 그 또한 귀찮은 일이 많았다. (무료 나눔 소파가 아닌 이상 소파 가격보다 사람 쓰는 가격이 더 비싸질 수도...)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건 존 루이스 백화점에 7일 내 배송 가능한 소파 섹션이었는데, 제일 무난한 소파 모델 몇 가지 컬러를 정해놓고 판매한다. 집 근처에 매장이 있어서 앉아보기도 했고. 그런데 한 끗 차이지만 색상과 패브릭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소파가 한두 푼도 아닌데 맘에 안 드는 거 쓰기도 그렇고, 안 그래도 좁은 집에 거실에서 가장 큰 가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정말 화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마지막으로 이케아에 가서 고르자, 가능하면 싣고 와서 바로 조립하자 했는데 이마저도 100% 우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대좌절)
- 1순위로 원했던 소파는 디자인 평범하고, 편안함도 나쁘지 않았는데 가격이 제일 비쌌고 (+ 조립도 난이도가 약간 있음)
- 그 옆에 있던 소파는 엄청 편하고 저렴했지만 디자인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디테일)
- 그리고 내가 디자인만 보면 1순위로 사고 싶던 소파는 편안한 감은 좀 덜했으나 가격도 착하고 조립이 쉬웠다.
소파 기다리다 지쳐서 당장 가져갈 수 있는 옵션으로 하자, 했는데 우리가 마감 직전에 가서 그런지 매장에 소파 재고는 아예 없음. 결국 우리는 디자인과 가성비를 선택하고 3주의 배송시간 (+배송비 추가)을 기다리기로 했다. 10주에 비하면 엄청 빠른 것 아닌가? (이 와중에 1순위로 원한 민트색은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고 해서 짙은 회색으로 선택함) 어차피 고양이가 또 뜯을 테니 비싼 소파 사봤자 눈물만 나겠지...
내가 수입 브랜드 가구를 커스텀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가구 사면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이내에 배송받을 수 있었던 거 생각하면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나뚜찌나 프릿츠한센 소파 사면서 이렇게 기다리는 거면 억울하지도 않지... 코로나 때문에 더 심해진 거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편한 소파여도 두 달 넘게 받을 수 없는 거라면 (심지어 그 배송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대기시간임) 소파 없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서 소파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영국 사람들이 획일화된 디자인을 원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24시간 배송을 강조하는 업체도 있는 것보면 기다리기 싫은 건 만국 공통일텐데 말이지.
여튼 다음에 혹시 가구 바꿀 일이 있다면 버릴 때 매우 신중했다는 교훈을 얻은 시간이었다. (....)
- 새 가구를 구매하면 배달 옵션을 잘 봐야 한다.
무료배송 - 보통 백화점에서 사면 조립, 배송 다 포함
문 앞까지만 배송(유료) - 박스채로 놓고 감, 조립은 내가 해야 함
방 안에 넣어주고 설치(유료) - 이 단계부터는 조립 포함, 포장재 정도는 가져가 줌
방 안에 넣어주고 설치하고 이전 가구 철거(유료) - 철거비용 포함된 경우 배송비가 꽤 비쌈
- 중고 가구를 산다면 보통 man and van이라고 부르는 업체를 따로 예약하는 게 좋음 (안 그러면 직접 실어와야 할 테니)
- 가구 버리는 것도 유료
council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서 수거 요청 (유료)
따로 가구 수거 업체 고용 (유료) --> 이 업체들 비딩 할 수 있는 플랫폼도 있음 (Lovejunk)
직접 가져갈 수 있는 크기면 리사이클링 센터에 갖다 놓기 (방문 전에 예약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