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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ul 04. 2021

한국, 베트남, 영국 중 어디가 좋아?

지구 상에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결론

영국 살아보니 어때?


영국으로 이사 온 지 이제 5개월이 지났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이 지나가며 물어보는 말인데 사실 5개월 살아서는 영국 생활이 어떤지 이야기하기가 난감하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여기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제대로 된 외출을 한 것도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그간 '사이버 영국 생활'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와서 가장 많이 한 건 온라인 쇼핑과 마트 장보기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베트남에 살다왔다고 하면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베트남 정말 좋지 않냐며 부러워한다. 영국보다 날씨 따뜻(... 은 아니고 엄청 덥지만) 하고 물가 싸고, 한국이랑 가깝고, 교민사회도 크고, 메이드랑 기사 두고 수영장 딸린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또 반대로 내가 영국 간다고 했을 때 부러워한 친구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스럽게 영어 늘 것 같은 환경, 선진국 살아보는 경험, 유럽 여행도 편히 갈 수 있고! 물가는 비싸지만 그만큼 월급도 엄청 많이 받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데 삶이란 게 그렇게 단편적이지가 않더라.


나도 한국에서 살았을 때는 '해외생활'하면 막연하게 좋아 보였다. 그런데 서른 살 넘어 나와보니 사는 곳이 어디든 각자의 행복과 고충이 있고 그곳에 산다고 해서 부러워할 것도, 안타까워할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여름나라의 향기

하늘하늘한 야자수와 느긋한 분위기, 수영장 딸린 고급 아파트에 메이드가 와서 청소해주고 호텔 식당 가서 밥 먹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매일 택시 편하게 탈 수 있는 베트남 생활을 상상했다면 일상에서 펼쳐지는 환장 또한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보다 물가가 싸지만 그만큼 내 월급도 저렴해질 수 있다는 것, 어떤 날은 길이 다 잠길 정도로 비가 오는 것, 약속한 시간에 안 온다거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류의 에피소드가 매일 반복되거나, 어떤 날은 택시 안 잡혀서 빡친 마음에 이동을 포기하거나 등등. 나는 베트남 생활을 아주 길게 한 편이 아니라서 딱 아름다운 모습, 그러니까 허니문 기간만 즐겼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처음에 개고생 한 건 미화되고 베트남 떠날 때 즈음 그곳 생활에 익숙해진 내 모습만 떠올리기도. 


아직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런던의 풍경


영국 하면 떠오르는 고풍스러운 도시 풍경과 큰 공원, 아기자기한 카페들... 동네 카페에 앉으면 이웃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고, 박물관과 갤러리는 무료입장이니 매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영국 생활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소파 사는 데 2달 걸린다든지, 당장 몸이 아파도 GP 예약은 제일 빠른 게 2주 뒤, 그것도 전화로 상담 가능하다. 가끔 상담원이랑 전화해야 할 때는 심호흡 크게 몇 번 하고 전화를 해야 한다. 상담원 연결까지 1-20분 이상 걸릴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지금 나는 운전면허 교환 절차를 밟고 있는데 중간에 문의할 게 있어서 메일 보냈더니 답변이 5일 만에 - 누가 봐도 복붙한 내용으로 -  왔다. 우편으로 보내도 그것보단 빠를 듯.. 운전면허 최종 교환 예상 소요시간은 6주. 거의 까먹을만하면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외에도 엄청난 외식 물가 때문에 자동으로 자연스럽게 집밥을 하고 커피도 캡슐커피로 직접 내려마신다거나 (베트남에서 매일 외식하고 카페 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 집에 뭔가 고장 나면 사람부터 부르는 게 아니고 유튜브에 고치는 방법부터 알아보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해외 살다 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정말인 게, 나를 포함해 베트남이든 영국이든 여기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대부분 항상 한국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고, 모국어만 쓰면 되고, 가까이에 가족들이 있고, 생활 편의성, 교통 인프라나 특히 의료 서비스는 말해 무엇.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 살 때 매일이 행복했나 하고 돌이켜보면 또 그건 아니었다. 난 스스로 꽤 빠릿빠릿하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한국에서의 속도 경쟁이나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게 버거웠고, 항상 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졌으며 서울의 엄청난 인구밀도는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라는 게 좀 더 정확하겠지만... 


결론은 사는 곳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다.

우중충한 영국 날씨가 싫어서 일 년 내내 날씨가 좋은 하와이 가서 산다고 하면 무조건 행복할까?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뷰 좋은 방에 살면 매일이 여행 같으려나? '어쩌다 보니' 베트남 거쳐 영국에 와서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여행 온 듯한 설레는 기분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생활은 결국 현실이고, 여행 왔을 때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기분과 일들을 매일 겪어야 한다는 점. 하다못해 매월 공과금 정산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사는 장소보다는 내가 일상에서 행복을 잘 찾아내는지가 중요한데 이건 그냥 내 마음에 달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에 베트남 갔을 때랑은 다르게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뭘 하고 있나' 라든지 '다 때려치고 한국 돌아갈까' 하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억이 흐릿해져서 그렇지 분명 그 때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으니... (아직 내가 영국의 겨울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럴수도...)


세븐시스터즈


아마 여기 떠나는 날까지 고군분투하면서 살겠지만, 시간이 또 지나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 아직도 여기는 여름인지 아닌지 애매한 날씨지만 해가 더 짧아지기 전에 영국의 매력을 최대한 많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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