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계획적일 줄이야
지난 2월 마지막 주말,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3박 4일 동안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아, 이전에 포스팅에 등장했던 그 친구들이다. (그 다음 얘기를 쓰겠다고 해 놓고선 아직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
https://brunch.co.kr/@withalice/17
여튼, 이 친구들과의 여행은 이전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게으른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직장생활 하느라 바쁘니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나 빼고는) 휴가를 자유롭게 쓰기 어려우니 비수기에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 이래저래 난관이 있었지만 이번 2월 마지막 주말을 포함한 4일은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홍콩에 다녀오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왕복 비행기 티켓과 숙소만 정해두고 아무것도 안했을 나지만, 이번 여행은 괜시리 걱정이 됐다. 친구들이 제주도에서 시간 맞춰 올라올 수 있을까, 홍콩에서 보고 싶어하는 게 많은데 이 날짜에 다 볼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원하는 게 다른데 잘 조율할 수 있을까... 혼자 또는 남편과의 여행에만 익숙한 나에게는 조금 어색한 순간이었다.
상대적으로 내가 시간이 많으니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라 내 스스로도 놀랐다. 채팅방에서 이야기 나왔던 장소들을 모두 구글맵에 저장하고, 날짜에 맞춰서 배분했다. 그리고 유심이나 교통카드처럼 공항에 내리자마자 사야할 것들은 와그에서 미리 구입했다. 이 과정을 지나고 나니 시간 단위로 쪼개진 시간표가 나왔다. (...)
패키지 여행사 직원처럼 비행기 이티켓(...평소에는 인쇄해 본 적이 없다)과 와그 바우처, 에어비앤비 안내문을 인쇄한 다음 투명 클리어 파일에 끼워서 공항에 가는 내 모습이 참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 신선한 여행은 처음이라며, 나의 두 번째 홍콩 여행이 시작됐다.
우리는 12시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갈 예정이었으나, 대부분의 비행편이 그렇듯 스케줄은 지연되었고 예정 시간보다 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뒤에 홍콩 공항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숙소가 홍콩역 바로 근처라 공항철도 타고 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 그리고 출국 전에 와그에서 옥토퍼스카드, 공항철도 티켓, 유심카드, 디즈니랜드 티켓을 미리 구매해뒀기 때문에 공항에서 헤매지도 않았다. 현지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도 저렴해서 우리는 이 서비스에 꽤나 만족했다.
3년 전에 홍콩에 왔을 때도 이 각도로 사진을 찍었던게 생각났다. 그 때는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친구들과 설레는 맘을 가득 안고 셀카를 잔뜩 찍으면서 열차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우리는 그렇게 잠들 틈도 없이 빠르게 홍콩 시내에 도착했다.
우리의 숙소는 홍콩역에서 걸어서 7~8분 정도, 셩완역에서는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였다. 숙소의 위치는 정말 최고였지만 홍콩의 대부분 호텔이나 집이 그렇듯 숙소는 좁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방이 세 개나 있었고 필요한 건 모두 있었다. 화장실이 좁아서 샤워하기 조금 불편했던 것 빼고는 숙소 자체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일행이 셋일 때는 에어비앤비가 최고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여기!
https://www.airbnb.co.kr/rooms/3304965
숙소에서 대강 짐 정리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나의 1시간 단위 계획표(!)에는 오늘 저녁을 먹고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려고 되어 있었는데, 비행기가 1시간이나 지연된 바람에 저녁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때만 해도 '다른 날들이 있으니 그 때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쿨하게 저녁 먹으러 이동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여행 기간 동안 그 유명한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지 못했고, 여행 내내 생각나는 거나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좁은 소호 골목을 지나 저녁식사를 위해 카우키KauKee 에 들렀다.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가게 밖 저 멀리까지 줄을 서 있었는데, 과연 1시간 내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이 시점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완전히 포기했다.) 은근 쌀쌀한 날씨에 밖에 서 있는 동안 우리는 또(!) 셀카를 찍거나 주변 가게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허름한 국수가게 앞에는 아기자기한 디자인 소품샵, 가로수길에서나 볼 법한 편집샵들이 쭉 있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이 작은 골목길. 사람들이 이래서 홍콩의 매력을 느끼는 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식사를 했다. 직원들은 친절하지 않았고, 큰 테이블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합석을 해야한다. 그리고 저녁 늦게 간 때문인지 우리가 먹고 싶었던 메뉴는 품절되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패스트푸드 마냥 국수가 빨리 나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30분 넘게 기다려서 먹을 맛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혹시 내가 유명한 메뉴를 먹지 못해서 그런걸까...?
이 날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우리는 다음 날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