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곳이 여기 있네
몇 년 전 홍콩을 찾았을 때 나는 홍콩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돌아갔다. 당시 날씨가 너무 더운 데다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떠난 것 때문이었는지, 내게 홍콩은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홍콩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두 번째날 아침식사는 내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숙소에서 가까운 커핑룸Cupping Room을 가게 되었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 내 인스타 피드에서 본 곳인데, 깔끔한 브런치와 플랫화이트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마침 검색해 보니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해서 바로 도전!
커핑룸 셩완점은 매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꽤 많이 차 있었다. 특이한 건 홍콩 사람이 아닌 외국인 손님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아마 영어 메뉴판이 있고, 직원과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한 몇 안 되는 식당이라 그런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식사가 나왔는데, 브런치와 커피 모두 내 맘에 쏙 들었다. 사람들은 에그 베네딕트를 많이 시켰지만 나는 계란 반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스크램블 에그를 얹은 메뉴 주문! 느끼한 맛이 전혀 없고 건강한 빵 맛과 계란이 잘 어우러져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플랫화이트는 내가 이제까지 마셔 본 플랫화이트 중에 가장 맛있었다. (아, 내가 한국에서 간 카페들이 다 별로였을지도... )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다음 향한 곳은 근처의 만모사원Manmo Temple 이었다. 이 여행에서 참 좋았던 건 숙소에서 5분, 10분 거리에 갈 만한 곳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래서 숙소의 위치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만모사원으로 가는 길에 의외로(?) 모던한 카페들이 몇 개 있었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 도시의 매력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앞에 작은 노점상이 있었는데, 내 친구는 여기서 가족들에게 전해 줄 작은 기념품을 고르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흥정을 몇 번 하고 나서 나무로 만든 동물 조각상을 골랐는데, 홍콩 느낌이 나면서도 참 귀여웠다.
만모사원을 가 보니 엄청 큰 절은 아니었고, 진한 향 냄새가 가득 찬 곳이었다. (사실 무슨 절인지도 모르고 친구가 오자고 해서 무작정 따라온...) 여기가 왜 이렇게 유명한가 싶었는데 의외로 관광객이 많았고, 심지어 한국인 패키지 여행객들과 조우하기까지 했다.
그다음 우리가 향한 곳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level Escalator. 소호 거리를 지나 도착한 곳인데, 좁은 골목길마다 하나둘씩 예쁜 가게들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도착해보니.. 언덕 저 끝까지 에스컬레이터가 닿아있어서 정말 놀랐다.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곳이라는데, 나는 홍콩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아서 영화의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시간 나면 홍콩 영화를 한 번 감상해 봐야겠다, 는 생각이 든 정도?
끝까지 올라가다 보면 어디까지 갈지 몰라서 우리는 적당히 중간에 내린 다음 피크트램을 타러 가기로 했다. 구글 맵에서 봤을 때는 5-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길을 엄청 헤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걷다 보니 인도가 없는 차도에 마주하기도 하고, 엄청난 언덕길을 만나기도 하고..
걷다가 한 모녀를 만나서 간신히 피크트램 정류장을 안내받아 도착했는데 줄이 어마어마했다. 3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우리는 피크트램에 몸을 실었지만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맨 뒤에 서서 갔는데, 피크트램이 출발한 순간 이것이 우리에게 행운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뒤 창문이 시원하게 트여있어서 철길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을 난간에 기대게 되는데 반쯤 누워서 가는 정도라 전혀 힘들지 않았다. 사람들 머리에 가려서 풍경이 보이지 않거나 그런 일도 없었고. 기다린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빅토리아피크Victoria Peak 에 도착한 다음 우리는 다시 한번 홍콩 시내를 보며 감탄했다. 높은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바다가 함께하는 풍경. 사실 서울에서 보는 한강 정도의 사이즈이긴 하지만, 서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 장소를 배경으로 또 셀카를 쉴 새 없이 찍었다.
내가 멋을 낸다고 운동화가 아닌 슬립온을 신고 온 탓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배려를 해 줘서 우리는 주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다음 우리가 향할 곳은 어퍼 하우스의 카페 그레이. 다행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우리는 여유가 있었다.
올라올 때는 피크트램을 타고 한 번에 올라온 곳이지만, 버스를 타고 내려갈 때는 구불구불 언덕길을 내려가야만 했다. 급경사에 좁은 도로, 급회전을 해야 하는 구간이 많은데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올라오는 버스가 지나갈 때는 내가 탄 버스와 부딪힐까봐 걱정이 됐다. 한참을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내려갔을까, 우리는 어퍼 하우스가 있는 쇼핑몰에 도착했다. 애프터눈티 예약한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아있어서 쇼핑몰을 잠깐 구경한 다음 카페 그레이로 향했다.
처음에 들어서자마자 심플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카페 그레이Cafe Gray 이름처럼 모노톤 가구와 패브릭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직원들도 회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보통 애프터눈티하면 고풍스럽고 화려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 곳은 애프터눈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 들었다. 찻잔과 주전자, 디저트로 나온 것들 모두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프터눈티 덕분에 내 다리도 다음 여행을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홍콩 여행을 떠나기 전에 회사 동료가 강력 추천한 곳이 바로 예만방譽滿坊 이었다. 다운타운에서 약간 떨어져 있긴 하지만, 새우 딤섬이 최고라며. 시간을 내서라도 꼭 가보라고 했다.
사실 이 곳이 유명한 건 장국영이 자주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홍콩 영화에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곳에 찾아온 이유 중 장국영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맛있다고 해서 온 것뿐...)
추천받은 새우 딤섬은 다 떨어져서 먹어보지 못했지만, 다른 딤섬들도 꽤 맛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딘타이펑의 딤섬처럼 만두피가 아주 얇거나 육즙이 가득한 건 아니다. 딤섬끼리 다 붙어 나와서 하나씩 떼다 보면 육즙이 흘러버리는 게 좀 아쉬웠다.
저녁을 먹은 다음 우리가 향한 곳은 몽콕의 레이디스 마켓Ladies Market. 내가 이전에 혼자 홍콩 여행 왔을 때는 혼자였기 때문에 야시장을 갈 엄두도 못 냈었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당연하게(!) 야시장으로 향했다.
몽콕역에서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면 가판이 끝도 없이 서 있는 골목이 있다. 동전지갑이나 가방, 러기지택, 열쇠고리 등등을 파는 곳인데 명품을 카피한 제품이 많다. 멀리서 보면 예쁘다 싶다가도 가까이서 보면 마감이나 질이 영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딱 그 가격 값을 한다고 보면 되는...) 지갑을 열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다. 특히 조그맣지 않은 물건은 누가 봐도 카피 제품이라는 게 바로 티가 나는 정도.
내가 마켓에서 산 건 멀X리 st 동전지갑 하나와, 환율 계산 잘못해서 산 에X메X st 팔찌 두 개. 이 쯤하면 홍콩 여행을 기념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동전지갑은 은근히 여행 내내 자주 꺼내 썼다.
야시장 쇼핑을 마치고 발마사지를 받은 다음, 우리의 바빴던 2일 차 홍콩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이 날 마사지를 받지 않았으면 아마 난 다음 날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의 징징거림에 마사지샵으로 향해 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