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떠나려는 여행이지만, 인터넷 연결은 빼놓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여행 준비를 하면 가장 먼저 현지에서 핸드폰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대부분 고민의 여지없이 현지 유심카드를 구입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뭔가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편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나의 여행은 기간이 길어도 한 나라를 벗어나지 않아서 유심을 구입하는 것도 크게 걱정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적당한 유심카드를 구입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 여행이 거의 2주 이상 되는데 그 사이 무려 유럽 내 5개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정보를 알려주는 데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유럽 유심'이라고 검색하자마자 어떤 브랜드의 유심을 쓰는 게 좋은지, 플랜은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은지, 바로 그 유심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까지 첨부해서 정보를 알려주는 포스팅들이 줄줄이 나왔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유럽통합유심'을 구입하게 됐다.
사실 전화나 문자는 거의 쓸 일이 없고, 데이터양만 많으면 되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구입할 때는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고 데이터는 몇 기가나 제공하는지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내가 구입한 영국의 쓰리 유심은 데이터 플랜이 1기가 / 3기가 / 12기가 세 종류가 있었는데 나와 남편, 엄마 것까지 포함해서 한 종류씩 구입했다.
보통 여행은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내가 발 붙이고 살던 땅과 공기, 주변인들과 멀어지고 낯선 공간에서의 나를 찾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갈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의 단절이다. 낯선 곳에서 내가 길을 잃지는 않을지,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못하진 않을지 등등 정보가 차단되는 것에서 기인하는 걱정들이 더욱 많아진다.
8년 전, 처음으로 외국에서 유심카드라는 걸 구입해 봤다. 미리 정보를 탐색해 본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오슬로 중앙역에 붙어있는 몰에 가서 가장 저렴한 핸드폰을 사고 편의점에서 prepaid 심카드를 사다가 끼워서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낯선 번호 8자리를 부여받고 나서야 외국에 왔음이 실감 났다. 당시 저 핸드폰으로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전화/문자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이었다면 매우 능숙하게 유심카드만 내 스마트폰에 끼워서 쓰지 않았을까.
심지어 요즘은 여러 나라의 유심카드를 온라인에서 구입하고, 미리 택배로 받아볼 수 있어서 공항에서 헤매는 시간조차 없애버렸다. 덕분에 외국어 표지판을 보면서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으니 편하지만 가끔은 천천히 타국의 삶에 스며들던 그 과정이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