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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은 유심카드 구입부터

현실에서 떠나려는 여행이지만, 인터넷 연결은 빼놓을 수 없다

by 앨리스

언제부터인가 여행 준비를 하면 가장 먼저 현지에서 핸드폰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대부분 고민의 여지없이 현지 유심카드를 구입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뭔가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편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나의 여행은 기간이 길어도 한 나라를 벗어나지 않아서 유심을 구입하는 것도 크게 걱정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적당한 유심카드를 구입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 여행이 거의 2주 이상 되는데 그 사이 무려 유럽 내 5개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정보를 알려주는 데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유럽 유심'이라고 검색하자마자 어떤 브랜드의 유심을 쓰는 게 좋은지, 플랜은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은지, 바로 그 유심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까지 첨부해서 정보를 알려주는 포스팅들이 줄줄이 나왔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유럽통합유심'을 구입하게 됐다.


사실 전화나 문자는 거의 쓸 일이 없고, 데이터양만 많으면 되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구입할 때는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고 데이터는 몇 기가나 제공하는지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내가 구입한 영국의 쓰리 유심은 데이터 플랜이 1기가 / 3기가 / 12기가 세 종류가 있었는데 나와 남편, 엄마 것까지 포함해서 한 종류씩 구입했다.



보통 여행은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내가 발 붙이고 살던 땅과 공기, 주변인들과 멀어지고 낯선 공간에서의 나를 찾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갈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의 단절이다. 낯선 곳에서 내가 길을 잃지는 않을지,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못하진 않을지 등등 정보가 차단되는 것에서 기인하는 걱정들이 더욱 많아진다.



S73F1631.jpg 노키아 핸드폰에 레바라 심카드 끼워서 쓰던 시절. (2009년...)

8년 전, 처음으로 외국에서 유심카드라는 걸 구입해 봤다. 미리 정보를 탐색해 본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오슬로 중앙역에 붙어있는 몰에 가서 가장 저렴한 핸드폰을 사고 편의점에서 prepaid 심카드를 사다가 끼워서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낯선 번호 8자리를 부여받고 나서야 외국에 왔음이 실감 났다. 당시 저 핸드폰으로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전화/문자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이었다면 매우 능숙하게 유심카드만 내 스마트폰에 끼워서 쓰지 않았을까.


심지어 요즘은 여러 나라의 유심카드를 온라인에서 구입하고, 미리 택배로 받아볼 수 있어서 공항에서 헤매는 시간조차 없애버렸다. 덕분에 외국어 표지판을 보면서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으니 편하지만 가끔은 천천히 타국의 삶에 스며들던 그 과정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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