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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별장에서 1박 2일

TV도 스마트폰도 없이 이렇게나 재밌는 일이 많다니

by 앨리스

'노르웨이 사람들의 별장'하면 본 적은 없어도 막연히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호숫가 언덕 위에 나무로 지어진 이층 집 한 채가 있고, 호숫가에는 작은 배가 떠 있는 모습. 햇빛이 내리쬐는 밖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맥주 한 잔 하는 장면과 같은 것들 말이다. 놀랍게도, 이 별장은 내가 상상한 장면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20170618_102933.jpg 별장 앞 마당 전경. 큰 나무에 그네가 걸려있고 트램폴린이 있다.
20170617_205701.jpg 호숫가에서 올려다 본 별장의 모습
20170618_102938.jpg 마당(?)에 있는 야외용 소파와 테이블. 누워서 책 읽기 딱 좋은 포지션


별장에 도착해서 우리가 안내받은 방은 이층침대가 놓인 아늑한 방이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무 냄새가 가득 느껴졌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닥부터 벽, 침대, 블라인드까지 전부 나무로 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편백나무 향하고 비슷했는데 실제로 그 재질이 편백나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20170617_162902.jpg 사진 구도가 왜 이런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묵었던 방.
20170617_201045.jpg 호수가 보이는 거실 풍경

우리가 별장에 머무른 기간 동안에는 내 친구 부부(내 친구 진하, 친구 남편 Daniel), 친구 남편의 형 가족(형 Rangvald, 형의 아내 Maria, 조카 Sverre)들도 함께 했다. 사실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거의 성사되지 않을 조합(!)이었을지 모른다. 친구 그룹이 아니고서야 초면인 사람들끼리 여행 가는 일이 잘 없기도 하고, 게다가 가족 모임에 함께하다니! 이런저런 말을 계속 썼다 지웠다 하게 되는데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이다.


우리는 저 거실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주사위 게임에서 꽤 승승장구했는데, 끝까지 룰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다시 똑같은 게임을 한다면... 그때도 잘할 수 있을지는...


그리고 이 날은 (우리나라 표현으로 하면) 진하의 아주버님 Rangvald의 생일이었다. 친구의 형님 Maria가 직접 만든 거대 초코 케이크를 두고 소소한 생일 파티를 했는데, 생일 축하 노래를 무려 4개 국어(영어, 노르웨이어, 한국어, 포르투갈어)로 했다. 새삼 다국적(!) 모임이라는 걸 실감했다.


+ 그 자리에서는 서로 이름 부르고 존칭이 없는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 어색함이 별로 없었는데 우리나라식 표현을 쓰니 바로 거리감이 느껴진다. 역시 언어의 힘이란...


++ 대화하면서 노르웨이 근무환경에 대한 얘기를 대강 들었는데 1년에 휴가가 무려 5주에 부활절 주간, 크리스마스 주간 모두 쉰다고 한다. 그럼 1년에 대략 7주, 그러니까 거의 50일을 쉬는 거다. (당연히 토/일은 주말이니까 쉼) 우리나라 연차휴가가 대부분 2주 남짓인 걸 감안하면 참 안타까울 따름. 가끔 샌드위치 휴일 때 임시공휴일 지정하겠다고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둥.. 이런 얘기가 오가는데 일하는 시간이 생산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걸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20170617_210714.jpg 물고기 그물 던지러 가는 길

맛있는 저녁과 케이크,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이미 시간은 밤 9시가 넘었지만 바깥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다음 친구네 가족들이 제안한 건 물고기 잡으러 가자는 거였는데, 신기하게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게 아니라 그물을 쳐놓으러 가는 거였다. 아무런 미끼 없이 그물만 늘어놓으면 다음 날 물고기들이 걸려있다고 했다. 그물을 던지는 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고, 배가 천천히 움직이면 그물코를 하나씩 빼서 호수에 던지면 된다. 그러면 호수 안에 그물이 커튼처럼 드리워지게 되고, 지나가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는 거다.


우리는 그물을 네다섯 개쯤 호수에 던져둔 다음 별장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이 별장에 TV가 없었던 것 같은데, TV를 보지 않아도 하루가 꽉 찬 느낌이었다. 보통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있으면 어색해서 TV를 틀어놓거나 각자 스마트폰을 보게 마련인데 이 곳에서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충분히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어떤 물고기가 얼마나 잡힐지 기대하며 나무향 가득한 방에서 잠들었다.




20170618_102520.jpg 소박한 아침식사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모두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건 아니고, 각자 먹고 싶은 걸 그릇에 담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된다. 누군가는 거실에 앉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사실 나는 원래 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밀가루 음식이 내 몸에 잘 안 맞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노르웨이에서 먹는 갈색 빵은 단 맛은 없어도 고소한 맛이 있었다. 빵 한 조각 위에 햄이나 치즈 얹어서 커피와 함께 먹으면 깔끔하게 배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건강한 빵만 구할 수 있다면 아침식사를 빵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 차리는 데도 시간 별로 안 들고, 설거지 거리도 안 나오고 간편하니까!


느긋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 어제 던져둔 물고기 그물을 거둬들이러 가보기로 했다. 그물 던진 순서 반대로 다시 잡아당기면 되는데, 그물이 엉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각자 돌아가면서 한 번씩 그물을 거둬들이는데 의외로 그물이 팽팽하게 드리워져 있는 데다 물고기가 3-4마리씩 걸려있어서 잡아당기는 게 쉽지는 않았다. 거기다 나는 그물 잡아당기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해서 나중에 그물이 엉켜버렸다. (....) 전문가들이 나서서 그물을 풀어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내가 그물을 새로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20170618_114332.jpg 물고기 한 바구니 수확 완료!

생각보다 큰 사이즈의 물고기가 꽤 많이 잡혀서 올라왔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내 손으로 수확(?)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리가 이 물고기들을 관상용으로 쓸 건 아니니 바로 부엌에 들어가 손질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 부부는 물고기를 손질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마트에 손질된 생선이 얼마나 많은데!)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어색한 자세로 물고기 비늘을 제거하려는데 아무래도 어설펐는지 Maria가 방법을 물고기 손질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물고기를 눕혀서 칼로 살살 비늘을 긁어낸 다음,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제거하면 끝. 글로 쓰니까 간단한데,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를 물고기에 칼을 대는 게 약간 기분이 오묘하기도 하고 미끌미끌 거려서 손질이 쉽지 않았다. 여하튼 우리는 최선을 다해 모든 물고기를 손질했다.


그다음 요리는 남편의 몫! 일단 비린내를 잡겠다며 손질된 생선을 우유에 담근 다음 양파를 깔아 둔 팬 위에 놓고 익혔다. 양념은 후추와 고춧가루와 소금과... 기타 등등. 사실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보던 생선도 아니었지만 생선은 비린내 없이 간만 맞으면 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며 요리했다.

20170618_133252.jpg 국적 불명의 생선 요리 탄생

비주얼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의외로(?) 밥 반찬처럼 먹을만한 맛이었다. 이건 철저히 우리 부부의 평가고, 다른 가족들에게 이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


20170618_141513.jpg 호수와 카누가 함께 있는 풍경

한참 요리를 하고 나서 우리는 호숫가로 향했다. 남편이 웨이크보드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호숫가에 느긋하게 앉아있기로 했다. 남편들이 호수에서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사이 나와 내 친구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8년 전처럼 다양한 주제들이 오고 갔지만, 좀 더 어른이 된 우리의 대화는 직장 이후의 삶이나 가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 그대로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참 많이 지났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다.



호숫가에서의 시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1박 2일간의 별장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음 날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가 이른 아침이라 오슬로 공항 근처에 잡아 둔 호텔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의 삶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처음에 이 곳이 지루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지만, 오히려 도시 여행보다 더 알찬 시간을 보냈다. 떠날 시간이 되니 어찌나 아쉽던지, 기회만 된다면 겨울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이번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 별장을 뒤로하고 우리는 오슬로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별장 여행이 즐거웠던 건 노르웨이의 대자연이 준 감동도 있었지만, 진하의 가족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친절했던 가족들 덕분에 별장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안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친구 진하와 Daniel 부부를 비롯해 Rangvald, Maria, Sverre 모두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어제도 우리 부부는 별장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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