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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만난 탐페레 무민 뮤지엄

무민이 아니었다면 오지 못했을 도시

by 앨리스

보통 헬싱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라는 도시에 다녀온다. 페리를 타면 금방 다녀올 수 있기도 하고, 헬싱키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탈린에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 가기 한 달 전 쯤이었나, 페이스북을 보다가 탐페레에 무민 뮤지엄이 새로 열었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에 우리는 과감히 탈린을 포기하고 탐페레에 다녀오기로 했다.



moomin museum.PNG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게시물


이번에는 핀란드에서 운전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눈 뜨자마자 가까운 렌터카 영업소를 찾아갔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시즌이 하지 기간이라 렌터카(특히 스틱이 아닌 오토)가 전부 나갔다는 답변을 들었다.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게 좀 아쉬웠지만 탐페레까지 많이 멀지도 않고, 열차도 1시간에 1대 정도는 있는 것 같아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20170622_101922.jpg 숙소 근처에 있던 카페에서 아침식사

우리가 묵었던 숙소 바로 앞에 평점이 매우 높은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이 날이 저 카페를 들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헬싱키에 있던 날은 하지 주간이라 대부분의 가게도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카페에 앉아 파니니와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파니니 안에 들은 재료도 신선하고 커피 또한 맛있었다. 기차 시간이 임박해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20170622_105151.jpg 깔끔한 핀란드의 기차

숙소에서 중앙역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 그새 헬싱키 시내 지리에 익숙해져서일까, 우리는 구글지도 없이도 익숙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곧 떠나야 한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이미 며칠 전 투르쿠 갈때, 투르쿠에서 헬싱키로 올 때 탔던 기차라 탐페레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핀란드의 기차는 좌석 간격도 넓고 창도 시원시원하게 큰 편이라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통수단이다. 게다가 와이파이에 콘센트까지! (참, 이 얘기 저번 투르쿠 여행기에서도 말했던 것 같지만.. 좋은 기차 덕분에 여행이 더욱 즐거웠다.)


20170622_110647.jpg 가자, 탐페레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옆으로 헬싱키에 맞닿은 바다가 보였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내 눈에 비치는 모든 풍경이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way to tampere.PNG 탐페레 가는 길

우리가 다녀왔던 투르쿠는 헬싱키를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도시이고, 이번에 갈 탐페레는 비슷한 거리만큼 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기차로는 2시간 정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북유럽의 내륙 도시로는 탐페레가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북유럽 국가들의 수도(헬싱키, 오슬로, 스톡홀름, 코펜하겐)는 모두 가장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렇지만 여행객들이 굳이 찾지는 않는 그런 도시에 우리가 가고 있다니, 다시금 무민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20170622_131117.jpg 드디어, 무민 뮤지엄!


탐페레 역에서 걸어서 5~10분 정도 거리에 무민 뮤지엄이 있다. 뮤지엄 앞에 가면 누가 봐도 무민 뮤지엄을 알아볼 수 있게, 벽면에 귀여운 우리의 친구 무민이 떡하니 붙어있다. (반가워 무민!)


20170622_132037.jpg 티켓마저 귀여운 무민 뮤지엄
20170622_132200.jpg 티켓은 이 곳에 부탁해요


티켓 부스에서 티켓을 끊고 들어가는데, 직원이 티켓을 검사하지 않고 지하철처럼 알아서 티켓에 바코드를 대고 들어가면 된다. 오슬로와 헬싱키 공항에서도 느낀거지만 직원이 정말 몇 명 없고 대부분은 셀프 카운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인건비가 비싼 북유럽이라 그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티켓 검사기 뒤로 자동문이 열리고 무민 뮤지엄이 시작되는데 아쉽게도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뮤지엄 내부는 초기 무민의 모습부터 무민 이야기 시리즈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아주 크지는 않아도, 작은 이야기 하나까지 모두 보고 들으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림자로 표현한 무민의 모습이나, 무민 밸리를 표현한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다.


처음에 우리가 무민을 좋아하게 된 건 오로지 '귀여워서' 였는데 이 뮤지엄을 돌아보고 나니 무민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책으로 읽어보고 싶은데, 우리나라에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게 대부분이라는 점. (이참에 영어 책이라도 읽어야 하나...?) 제대로 무민 책을 찾아봐야겠다.


# 무민 뮤지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 https://muumimuseo.fi/en/



20170622_145233.jpg 뮤지엄의 기념품 샵
20170622_145348.jpg 무드등 귀엽지만 가격이...

전시회 관람을 모두 마치고 밖에 나오면 작은 기념품 샵이 있다. 이미 우리가 다 아는 그런 제품들이 있는 곳이지만 역시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사지는 않아도 하나하나 다 보게 되는 거 보니, 우리 정말 무민에 푹 빠진게 틀림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20170622_205325.jpg 3일 간 사모은 무민템들

원래 계획은 탐페레에서 돌아온 다음 헬싱키 근교의 아라비아 팩토리를 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생각보다 뮤지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 곳에 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은 찬찬히 정리하고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밤을 기다리며, 한 번 무민 아이템을 얼마나 샀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여행 다녀오고 한 달 넘게 지난 지금, 우리집에 남아있는 건 먹지 않는 물건들 뿐이다. 먹는 것들은 모두 해치웠기 때문이다. (...) 이렇게 한 곳에 모여있는 무민 아이템들을 보니 이번 여행을 의미있게 보낸 것 같아서 뿌듯했다.



헬싱키에서 여행 마지막 날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우리는 헬싱키 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유럽여행 2막을 위해 파리로, 남편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어쩌다보니 긴 비행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여행이었지만, '따로 또 같이' 한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색다른 추억을 남겼다.


우선 혼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항에서 쓴 우리는 '공항에서 시간을 쓰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공항에서 최소 3-4시간은 버텨야했다는 슬픈 사실이...) 그리고 그 시간에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거나, 주변을 좀 더 둘러볼 수도 있었다. 조금 외롭긴 했어도 매우 가끔(!)은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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